열아홉, 이제 시작이야 보리 청소년 13
최관의 지음 / 보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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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관의 선생님이 세 번째 책을 내셨다. 1914<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로 시작하여, 2017<열일곱, 내 길을 간다>를 거쳐, 2022<열아홉, 이제 시작이야>로 이어진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다.

 

흔히 나이가 들고 황혼에 즈음하여 지나온 자신의 발자취를 회고하는 자서전을 쓰는데, 최관의 선생님은 아직 50대로 한창 젊음을 발산하여 평교사를 거쳐 지금 교장의 자리에 와 있지만 곧 평교사로 돌아갈 거라고 한다. 그러므로 아직은 자신의 인생을 다 살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도 이렇게 열다섯, 열일곱, 열아홉으로 계속 써 내려간다면 자연스레 황혼의 삶도 나올 것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쫒겨난 뒤 중학교-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끝내고 마침내 대학에 입학하여 교사가 된 의지의 한국인, 열다섯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노동판에서 현실사회를 몸으로 경험하면서 성장기를 보내는 중 자칫 탈선하기 십상일 터, 다행히도 그건 몸속에 훌륭한 피가 흘러서인가 아니면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부모님의 덕분인가 고독과 갈등, 고뇌를 딛고 현재에 이르는 과정은 가히 평범한 영웅의 일대기라 말하고 싶다. 특히 무엇을 하든 굳세게 믿어주는 엄마의 존재가 아들보다 더욱 빛나 보인다. "너를 공장에 보내면서도 누나는 고등학교 다니게 했잖여? 남들이 거꾸로 산다고 말들 많았지. 아들이 저러는데 딸 공부시킨다고. 공부에 아들딸이 어디 있어? 할 수 있으면 하는 거여. 그러니 봐라. 이제 누나와 니가 바꾸어 봐줄 수 있잖여."

 

이 책도 어김없이 집안사정이 비슷한 친구 민우와 헤어질 때 선물로 받은 연습장 세 권과 함께 눈물겨운 우정으로 시작한다. 무엇보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원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한 인간이 성장하는 데 거부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의상을 갖추고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545와 베토벤의 '월광'을 직접 연주하며 장조와 단조의 차이를 가르쳐 준 음악 선생님,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 잡지와 표지를 통해 민중과 노동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데모하는 대학생에게 문을 열어 교실 가운데로 앉혀서 경찰을 물리친 역사 선생님, "지금 들어온 사람에게 누구냐고 묻지 마라. 얼굴도 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책만 읽으며 그대로 수업 시간을 떼우자.""건강해야 한다. 살아남거라."고 마지막 수업을 한 역사 선생님. 이들의 가르침을 올곧게 받아들여 번듯하게 자란 제자가 지금 교단에 우뚝 서 있다. 공교육의 현장이 아닌 검정고시 교실에서 보는 이런 수업장면은 눈물나게 가슴을 울리는 벅찬 순간이다.

 

내 인생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검정고시가 어떻게나 통과하기 어렵고 힘든 과정인지 잘은 모르지만, 글쓴이가 정상적인 중고 시절을 거쳐온 아이들과 함께한 대입 재수학원과 또 정상적인 시험을 거쳐 입학한 대학의 교실에서 발견한 공부와는 그 차이와 간격이 얼마나 큰지 눈앞이 캄캄했다는 고백은 사뭇 놀랍기만 하였다. '그냥 중고등학교 졸업이라도 시켜 주려고 정부에서 쉽게 풀도록 난이도 조절을 해 둔 게 검정고시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이다. 정서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로 문화적인 충격으로 다가와 자신의 미개척 분야인 정신세계를 두드려 깨웠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공허하였을지, 그 빈 칸을 채우기 위해 또 얼마나 노력하고 자신을 채찍질하였을까. 그저 상상해 보는 것으로도 오싹 추워진다.

 

대학생이 되어 엄마의 죽음을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엄마와의 여행, 지난 날의 은혜로왔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감사하는 마지막 문장, '엄마, 그리고 지금까지 만나온 많은 분들이 몸으로 내게 가르침을 준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 아무 말 안 해도 온몸에서 말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그런 사람.' 눈시울을 적시며 책장을 덮는 시간은 어언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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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타는 국어 수업 - 국어 시간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은 선생님에게
김명희 지음 / 창비교육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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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국어수업은 한마디로 실용적이다.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내용과 활동으로 가득차 있다. 국어 외 다른 과목도, 중등이 아닌 초등학교에도 두루 활용할 수 있는 학생 중심의 재미있는 국어수업 사례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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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에 태어난 악마 - 아이좋아 좋아 004
임이송 지음, 김현정 그림 / 도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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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편의 글이 모두 작가의 품성이 그러리라 짐작케 하는 곱고 아름다운 세계, 그리고 사랑 깊은 마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두 개의 항아리」와 「조각구름 이야기」「여섯 살배기 살림밑천」은 이 책에서 내가 보는 가장 슬프고, 서럽고, 착하고, 순한, 아름다운 작품으로 손꼽고 싶다. 특히 이 중에서도 '두 개의 항아리'에서 마지막 문장인 '부엌 깊숙이 숨겨 두었던 두 개의 항아리에는 오빠를 위한 사과와 홍시가 가득 들어 있었지만, 내 마음 속의 항아리에는 서러움과 단침만 가득했습니다.' 는 압권이었다. 난 결국 이 대목에서 울고 말았다. 감정이입이 절로 되는 간결하고도 정갈한 표현으로 단연코 최고로 꼽고 싶다.!

그 외에도,
'날마다 이런 맛을 느끼는 오빠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오빠의 행복을 한 조각 훔쳐 먹은 듯한 짜릿한 전율이 온 몸에 흐릅니다.'
'입이 떫습니다. 오빠가 먹을 때 지켜보고 서 있던 내 마음과 같습니다.'

「조각구름 이야기」에서 인동꽃 이야기는 시골에 살았던 나에겐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단지 인동꽃의 향기가 조금만 더 묘사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으나, '밤새 하얗게 핀 인동꽃입니다. 상그러운 향이 조각구름의 코를 간지릅니다' 에서 '상그러운 향'이라는 단어로 압축해 버린 솜씨와 아름다움이 놀랍다. '그때까지도 잠을 자고 있던 풀섶의 이슬이 언니의 발자국 소리에 그만 또르륵 구르고 맙니다.'도 얼마나 귀여운지...

「여섯 살배기 살림밑천」을 읽으면서 권정생의 「몽실언니」가 떠올랐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이며 강인하면서도 인간애가 넘치는, 그러면서도 '잘 정돈된 밭이랑은, 새벽을 타고 멀리서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 같습니다.'에서 보듯이 자연이 주는 훈훈함과 아름다움은 놓치지 않은 마음씨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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