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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과 화이트헤드 - 동학주문 21자에 대한 과정철학적 풀이
김상일 지음 / 지식산업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김상일의 “수운과 화이트헤드” (지식산업사 2001)는 수십 년 동안의 연구의 결실로 탄생한 보기 드문 역작이다. 이 책은 1년 전에 간행된 『동학과 신서학』의 보충 판인데, 논의를 개진하는 데 있어서 무리가 없고, 순서와 주제의 전개에 있어서도 탁월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책은 동서양의 신학을 추적해온 도올 김용옥의 사상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김용옥은 『도올심득 東經大全』에서 최수운의 사상을 “후천 개벽을 위한 실천철학”으로 평가한다. 동학사상 속에는 이른바 민본 (民本)이라는 의향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은 도올에 의하면 맹자의 왕도정치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다. 만약 동학사상에 담긴 민본이 김용옥의 말대로 맹자의 유교 사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수운이 개별적인 측면에서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수용하려고 의도했다는 점과는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무엇이다.
김용옥이 동학의 민본을 맹자에게서 찾으려고 했다면, 김상일은 동양의 유불선 그리고 서양의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 모두를 고려하면서 이를 부분적으로 비판한다. 서구의 신학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인격신을 바탕으로 하여 오랫동안 이어져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그 한계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동양에서는 유불선, 특히 불교를 중심의 무 내지 도가 중심이 되어서 기 사상으로 발전해 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중동지역의 척박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여 초월적 인격 신관을 발전시켰다면, 동북아시아에는 수풀이 많아서 범신론적인 신관이 발달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77쪽) 다시 말해서 서양에서는 “신”, “소유권” 그리고 “존재자”가 활성화되었다면, 동양에서는 “자연”, “자체권” 그리고 “존재 자체”가 주도적으로 자리매김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 “소유권” 그리고 “존재자”는 전지전능한 인격 신을 가리킨다면, “자연”, “자체권” 그리고 “존재 자체” 신의 특성을 생동감 넘치게 받아들이는 에너지 내지 기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물론 서구에서는 영지주의 내지 이른바 이단의 종파에서 인격신과는 반대되는 종교적 사상적 조류가 은밀하게 명맥을 이어 왔듯이, 동양에서도 강력한 색신 내지 상제로서의 신적 존재에 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간간히 출현한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폴 틸리히가 “종교 철학에서의 두 가지 유형” (1959)에서 언급되고 있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유형이 신앙과 철학의 영역에서 공히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전지전능한 힘을 지닌 인격신의 존재를 지칭한다면, 후자는 무, 도 그리고 기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른바 성스러운 영혼을 받아들이는 에너지를 가리킨다. 이러한 두 유형은 메타 종교에서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기본적인 것들인데, 놀랍게도 수운 최제우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사상 속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이라고 한다. 신과 자연 (Spinoza), 존재자와 존재 자체 (Heidegger), 신과 창조성 (Whitehead), 틸리히의 존재와 초월의 존재 (Tillich)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카테고리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포함 (包含)하며, 서로를 포함 (包涵)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포함 (包涵)은 타자언급 뿐이지만 포함 (包含)은 자기 언급적이며, 동시에 타자 언급적이다. 포함 (包含)은 부류와 요원이 서로 함께 감싸고 있기 때문에 주객을 나눌 수 없다. 마치 염분과 물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릇 속에 과일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 관계는 포함 (包涵)이다.” (51)
신과 자연 (Spinoza), 존재자와 존재 자체 (Heidegger), 신과 창조성 (Whitehead), 틸리히의 존재와 초월의 존재 (Tillich)는 서로 포함 (包含)의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서로 이질적인 내용을 지닌 채 양단적 (両断的)으로 배척하는 게 아니라, 상호 조화롭게 영향을 끼쳐서 제각기 변해나가는 양단적(両端的)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를 포함(包含)하며 양단적(両端的)으로 작용하는 상제로서의 신과 지기로서의 기운을 서로 통합하고 조우하며 아우르는 것들로 이해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수운 최제우였다. 말하자면 수운은 서양의 신관과 동양의 신관을 서로 아우르게 하여 세계에서 가장 유연하면서도 가장 단단한 “범재신론 panentheism”을 21자의 주문으로 환성시켰다는 것이다. 범재신론은 과정 신학의 입장으로서, 초월적 신관의 유신론Theim과 범신론을 결합시킨 것이다. 신의 존재는 가장 강력한 인격신이면서도 동시에 자연 속의 모든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경재는 동학의 신관을 범재신론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至気今至 願為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万事知)의 의미는 화이트헤드의 신과 창조성에 관한 유연한 이론과 마찬가지로 동서양의 신관을 절충시키고 통합시킨 가장 의미심장한 사상적 종교적 갈망을 담고 있다. 『동경대전』 「논학문」 13장에 언급되는 천주의 내유신령 (内有神霊)과 외유기화 (外有気化)는 지기로부터 받아들인 신의 두 가지 본성이다. (415).
놀라운 것은 김상일의 주장이 동학 측의 이세권의 주장과 천도교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면서 각자의 장단점에 가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 김상일 교수는 화이트헤드에 대한 네빌의 비판이 손병희를 비난하는 이세권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식민지 사관 내지 파시즘 등과 관련되는 해당 당사자의 정치적 입장은 완전히 무시될 수는 없으나, 지금 이곳의 현실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단면적 측면을 지닌다. 수운은 동양에서의 종교적 경향이 인격신, 소유권, 존재자의 측면을 무시해왔음을 인정하고, 이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 두반히 노력했다면, 화이트헤드는 이와는 역으로 서양에서 인격신, 소유권 존재자의 측면이 너무 강력하게 인정받았으므로, 신서학에서는 지기, 자체권 자체권 무 (無), 도 (道), 기 (気)로 표현되는 창조성의 원리를 보다 더 중시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서로 방향은 다르지만 수운과 화이트헤드는 김상일의 견해에 의하면 제각기 서양에서 활성화된 신, 소유권 그리고 존재자 그리고 동양에서 활성화된 자연, 자체권 그리고 존재 자체를 서로 소통하고 아우르는 두 개의 근본적 종교 사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운과 화이트헤드』는 기 사상의 근본적 뿌리로서 한국의 전통적 문화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가령 수운의 지기 (至氣)는 한국 불교로부터 이율곡을 거쳐, 녹문 임성주의 기철학 그리고 혜강 최한기의 신기 사상을 자양으로 하여 토대가 닦인 것이다. 이에 비하면 다산 정약용은 유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창조성 개념, 즉 기의 개념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임성주와 최한기와 같은 기 철학자들은 서양에서 오랫동안 철칙으로 이해되었던 인격신의 존재를 자신의 기철학에서 배제하다시피 하였다.
이들에 반해 수운은 천주와 지기를 동시에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물론 수운은 당국의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천주를 상제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천주와 지기를 결코 이원론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천주와 지기는 음과 양이 서로 아우르는 역동적 과정으로 해명되고 있는데, 이는 김상일의 주장에 의하면 화이트헤드의 창조성 개념과 전적으로 접목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이로써 저자는 한반도에서 완성된 동학사상과 천도교의 정신이 지니고 있는 세계 사상적 의미를 다시 한 번 재확인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동학이 세계 사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유는 윤노빈의 지적대로 시천 (侍天), 양천 (養天) 그리고 체천 (體天)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기운에 의해서 역동적으로 변화되어 나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