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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비밀계정 - 주눅 든 나를 일으켜줄 오늘의 편지
김도치.서반다 지음 / 이봄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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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는페미’계정 운영자 김도치와 그의 동료 서반다가 주고 받은 편지를 모아 놓은 책이다. 출간했을 때부터 기대한 책인 만큼 책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말로 가득찬 책을 읽으며 나까지 몽글몽글해짐과 동시에 공감도 되고, 부당한 일을 당한 이야기를 보면서는 같이 분노도 했다. 서로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했지만 그 편지가 서로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건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 아닐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이 책에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연대는 거창한 게 아닌, 나도 그랬었다, 나도 그런 상황을 겪었다, 라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분노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지금은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다.”라는 말을 한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옛날보다 뭐가 많이 나아진 걸까? 여성도 투표권이 생긴 것?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는 것? 직업을 가진 여성이 많아진 것? 그에 따라 경제력을 갖춘 여성이 많아진 것? 글쎄. 당연하게 주어져야 할 기회와 권리를 늦게나마 가졌으니 감사해하며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아직 말할 게 많다. 요구할 게 많다. 강간하지 마, 성폭행하지 마, 성추행, 성희롱하지 마, 불법촬영하지 말고 유포하지 말고 소비하지도 마, 스토킹하지 마, 때리지 마, 죽이지 마, 승진 기회를 박탈하고 임금 낮추지 마, 착함과 미의 기준 강요하지 마.

이러한 요구가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요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도 포털에 “왜 안 만나줘”만 검색해도 수많은 피해자가 나온다. 안 만나준다는 이유로 여성을 때리고, 협박하고, 죽인다. 아직 우리나라는 성범죄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이며 남녀임금 평등지수는 세계 98위고, 연소득 격차 순위는 세계 120위이다. 페미니스트들은 거창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자다움”과 “남자다움” 따위는 없으며 성별로 인해 주어지는, 기대되는, 결정되는 역할 따위는 없다고. 어느 한 성별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겪어선 안 된다고. 그러기 위해서 우선, 연대가 필요하다.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공감이 필요하다. 나 혼자일땐 공허한 외침이 되지만 함께할 땐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그 힘을 보았다.

🔖 페미니즘을 만나고 해방감과 동시에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부당함을 인지하는 감각은 갈수록 날카로워지는데 이를 현실에서 표현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잖아. 분명 머리로는 잘못된 걸 알지만 실제 행동으론 이어지지 못하는 거야. 그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비겁하고 옹졸한 내 모습만 마주하게 돼. 그 괴리감에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도 잦았거든. _1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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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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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돈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런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 P11

나는 열여섯에서 열일곱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고, 그건 내가 발 딛고 선 이 세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내가 누려온 모든 편리한 것들이 과거에 남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새삼 두려워졌다. - P33

이상하게 변해 버린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같은 건 아주 별 볼일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궁금해하지 않는 인간의 삶은 지루하다. 그 와중에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기는 했다. 카메라 속 사진들. 매끄러운 네모 속에 그저 그렇게 나열된 장면들. 나는 변할 일 없는 그 안쪽 세상을 때때로 그리워하고, 또 궁금해했다. - P37

엄마를 보내주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이 죽어서도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후회 없이 애도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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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석양 아래서 누군가와 두 개의 그림자가 서로 합쳐졌던 시절이 종종 있었음을 떠올린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실려 가다가도 어딘가에 한 번은 내려앉게 마련인 나뭇잎처럼, 안은 이 땅에 다다르고 나서도 최소 한 명은 그런 이를 만난 적 있었다.
그러니까 미아, 너의 곁에는 지금 그런 사람이 있구나. 두 개의
그림자를 기꺼이 하나로 합쳐도 좋을 만한.
그리고 미아가 다음번 바람에 떠다닐 나뭇잎이 될 생각이 없다는 것쯤은, 표정과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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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은 자라오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끊임없이 상정한다. 또래 여성과 친구로 잘 지내고 우정을 쌓기 보다는, 누가 누가 더 예쁘고 몸매가 좋다는 음담패설을 일삼기 일쑤였다. (..)
여성과 맺는 관계의 궁극을 ‘섹스’로 놓는 문화 안에서 성애 이외의 것은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 당한다. 그래서 어떤 남성들은 성격에 따른 혹은 일로서 행해지는 친절과 웃음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성애와 무관한 관계를 이성과 맺어 본 적이 드물기 때문에 자신을 향한 이성의 긍정적인 행동에서 일단 성적인 함의를 찾고 보는 것이다. 심지어 처음 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 P21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이론이자 운동이다. 동시에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비뚤어진 남성성을 바로잡는 방법론이기도 한다. 남성들을 착각의 늪에서 구해 내고, 여성과 동등하게 관계 맺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은 남성에게 필요하다. - P23

남성이 고백해서 얻는 최악의 결과는 거절뿐이지만, 여성은 날벼락같은 고백을 거절할 경우 예상되는 불편과 불이익을 고민해야 한다. 얼마나 불공평한가? 갑의 위치에 있는 남성들은 함부로 고백해도 괜찮은 상황을 한껏 이용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보고싶다’와 같은 말이 어떤 경우에는 세상 모든 욕설보다 끔찍할 수 있다. - P27

이나미 신경정신과 의사는 이별 후 여성은 먼저 자신을 자책하지만, 남성은 남의 탓을 먼저한다고 꼬집는다. 이 차이는 사실 남성과 여성의 권력 차이에서 기인한다.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여성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남성이 다수 존재한다. 내 소유물이 나를 함부로 떠난다? 나를 무시한다? 내 말을 안 듣는다?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이별 또는 거부의 원인을 오로지 여성에게 두고, 이별의 피해자로서 ‘정당한 복수’를 하겠다는 게 이별 폭력 가해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생각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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