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국주의 한울아카데미 737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비의 『신제국주의』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확실한 상황에서 석유를 둘러싼 미국의 패권전략을 시-공간적인 변화에 따른 전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적 변모과정을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들은 저자 스스로가 명명하고 있는 ‘역사-지리적 유물론’적인 관점과 세계체계 분석에서 빈번히 활용되고 있는 ‘장기 지속’의 관점(주로 지오반니 아리기의 분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을 통해 전개되고 있다. 주요한 분석적 개념으로 자본의 순환과 유통에 따른 ‘공간적 조정’(spatial fix)과 자본축적, 그리고 축적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고전적인 제국주의론과 그 결과로서의 ‘강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 활용되고 있다. 19세기 말 전개된 제국주의가 영토적 침략과 정복을 전제로 한 피식민지역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이었다면 하비가 ‘신제국주의’라고 지칭하고 있는 오늘에는 영토적 침략과 같은 거부감을 주는 방식은 사라지고 ‘세기’와 같은 시간적 개념의 확장 하에서 어떻게 정치적 헤게모니와 경제적 헤게몬이 재편․관철되면서 (정치권력 차원에서) 비가시적인 제국주의적 침략이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고전적 제국주의의 속성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이와 같은 부르주아적인 자본순환의 위기 돌파 전략은 끊임없는 저항투쟁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신제국주의』의 핵심 분석 대상인 미국은 헤게모니 확보를 통한 동의를 얻어내기 보다는 강제에 의한 동의를 얻어내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본질은 전적으로 석유와 관련된 것일 뿐이라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주장을 하비 역시 인정하고 있는데, 현상적인 기술에 그치지 않고서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의 본질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며 제국주의와 미국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하비는 다소 모호한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지칭하면서 이를 다시 국가와 제국의 정치‘와 ’공간과 시간에서 자본축적의 분자적 과정‘이 모순적 결합된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미국의 권력을 설명하면서 영토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를 통해 설명한다. 그런데 영토의 논리의 설명들은 정치․군사적인 설명들인데, ’영토‘라는 단어와 ’자본‘이라는 단어의 층위가 다르기에 다소 어색한 구분이라는 생각이다. (하비의 지리학적 background가 이와 같은 용어를 통한 구분을 선호한 것 같다.)

제국주의에 대한 기존의 가장 일반적인 설명은 레닌의 ‘자본주의의 마지막(최고의) 단계’였는데, 하비는 레닌의 견해보다는 아렌트의 ‘부르주아 정치 통치의 첫 번째 단계’라는 주장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실 레닌의 견해를 따르자면 오늘날 역시 제국주의이고, 따라서 ‘신제국주의’라는 용어를 굳이 따로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구제국주의’와의 차이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필요할 것인데, 아렌트의 견해는 제국주의의 변화된 양상들을 새로이 분석하는데 있어 아주 유용한 설명방식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접근은 이그나티에프의 ‘옅은 제국(empire lite)’에 대한 설명 등과 이어지면서 하비 논의에 일관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186-70년대의 첫 번째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 이후, 1930년대 초반, 1970년대 초반으로 이어지는 ‘주기적 공황’ 국면에서 부르주아들은 항상 위기 타개를 위한 시도 역시 끊임없이 행하고 있다. 수업의 첫 번째 텍스트의 저자인 프리드먼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최소한의 개입과 시장질서의 전면적인 관철을 주장하지만 하비가 보기에는 오늘날 미국 중심의 신제국주의적 질서 하에서 부르주아 정치의 위기 타개 전략은 사실상 ‘국가’에 기대고 있을 뿐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뒷받침된 금융자본의 개입”(134쪽)을 통한 축적과 이와 같은 “국가권력과 금융자본의 포식적 측면들 간의 부정한 동맹은... 경멸적 자본주의의 단면”(134쪽)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기업농들이 비용의 20%를 정부로부터 보조받고 있다는 사실은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자유무역 증진을 위한다는 국제기구의 경우에도 “실제 부유한 국가들이 보다 빈곤한 국가들에 대해 집합적인 이점을 유지하는 부당한 무역을 요구”(132쪽)하고 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하에서 강탈에 의한 축적의 전형적인 예로 설명되고 있는 민영화를 살펴보자. 하비의 설명에 따르면 자본의 과잉축적의 위기에 따른 잉여자본의 활용을 위한 전략으로서 등장한 것이 민영화이다.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자신의 물적인 기반을 스스로 폐기하는 역설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민영화의 추진주체 역시도 정부라는 점, 즉 민영화 역시도 정부(국가)주도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을 끊임없이 거부하고 있음에도 사실은 민족주의와 결부된 형태로 국가주의의 시장적 변형일 뿐인 듯하다. 강탈에 의한 축적을 확대재생산과 연계시키는데 있어서도 국가권력이 끊임없이 금융자본 및 신용기관들을 지원하면서 가능해진다(148쪽). 오늘날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적인 영역과 주체들을 파괴로 내몰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 하에서도 국가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인 듯 하다.

끝으로 하비의 논의에서 불만족스러운 점 한 가지를 지적하고 끝내겠다. 하비는 1970년대 신자유주의 흐름 이후의 강탈에 의한 축적을 설명하면서 마지막에 금융적 권력에 천착하고 있다. 오늘날을 금융자본운동의 투기적 속성에 대한 언급이 간과된 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비는 자본운동의 흐름을 설명하면서 영토적 속성을 ‘지리학자’로써 강조하고 있는데 금융자본에 대해서도 “금융적 권력의 영토적 집중”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 역시 지리적 경계에 기반한 국가 차원의 설명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오늘날 소위 초국적 금융자본의 운동에 대해서 ‘영토적 속성’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 지에 대해서는 보다 진지한 토론이 필요할 것 같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함께 비약적으로 팽창한 금융자본에 국적과 같은 영토적 속성들이 얼마나 있을까? 동시에 생산을 통한 가치의 실현이 아니라 기대가치 혹은 부풀려진 가치를 무한증식하는 금융자본의 실물적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영토’와 같은 ‘구제국주의’ 분석틀로써 계속 설명을 해 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상당히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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