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내부 작가정신 소설향 12
이제하 지음 / 작가정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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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작가들이 독재와 억압을 겪은 이들의 아픔을 소설의 소재로 다뤘다.  '보라, 권력이 개인에게 행사한 폭력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다'라고 외쳐왔다. 하지만 그들 다수가 저널이 흩뿌리는 숱한 후일담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기억환기'에 그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황석영의 신작 <오래된 정원>도 그와 같았다고 본다.)

<풍경의 내부>는 풍경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것은 상황이라던가, 우연, 혹은 분위기 등의 어휘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풍경 때문에 실제가 변질되거나 미화되는 일같은 것은 없지만, 동시에, 그것의 보이지 않는 위력을 벗어날 수도 없다. 우리가 흔히들 '시대' 나 '시절'이라고 뭉뜽그리는 말들을 작가는 '풍경'이라는 조감도 속에서 보다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두명의 주인물 '나'와 '서례'는 각각 나름의 사연으로 풍경에 눌려 살아가는 약한 인물이다. 구체적인 설정은 드러나 있지 않지만 아픔의 원인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어느 세대가 어떠한 힘든 시대를 보냈는가, 어느 세대가 어느 세대보다 더 내상을 입었는가를 따져보는 것은 그리 유용하지 않다는듯. 다만 어느 누구도 풍경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가 더 문제이다. 존재의 뿌리를 되짚어보기가 어려워질수록. 글로벌리제이션의 개별적 유랑민일수록..

내부를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풍경을 살아내는 인간이 위치하고 있더라. 얼핏 '서례'는 종잡을 수 없는 여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내부적인 완결성을 지녔으며 '나'를 자각으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맡고있다. '나'는 '서례'를 만나는 순간부터 나를 짓누르는 억압이 얼마나 거대했는가를 인지하며 그 실체를 알기 위한 혼란을 겪는다. 

'나' 의 갈등은 순결성에 관한 비뚤어진 인식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순결성에 대한 집착은 권력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이며 근대구조의 재생산 기제이다. 작가는 이것을 '자신이 오물투성이므로 상대는 순결해야 한다는 오만방자한 독선'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고백을 더 이상 미루지 않는다.

'깊은 밤의 작부들은 아름다워...(중략)...밤에 이 앞을 못 들은 척 지나가면서 때로 보는 건데 저들끼리 새치를 뽑아주는 광경 말야. 숨이 콱 막혀오지. 어느 그림이 그보다 아름다울까.'

그러나 우리는 작가에게 구조에 함몰된 인간을 구해낼 재간까지 짜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작가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일수는 있으나 혁명가는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자각 그 자체가 서례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막기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부가 변해도 풍경은 여전히 동일하다.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 마디가 정확히 부러지는 해답을 원하는 이들은 갈증만을 더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져야 하는가....? 나아진다면 어떻게? 그러한 방향으로 인간은 과연, 기여할 수 있는가? 그래야 한다는 강박을 불어넣은 자가 어쩌면 새로운 풍경, 새로운 권력자인 것은 아닐까. 

그것은. 저마다 다른 풍경을 꿈꾸는 것보다 더 허망한 일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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