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서 춤추다 -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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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귄의 에세이 3부작 격인 이글은 작가의 1976-1988년 까지의 강연,에세이,서평을 모은 책으로, 출판 전 작가의 퇴고과정을 거치며 이후 생각이 변화한 부분은 파란잉크의 덧붙이는 글을 함께 수록한 편집본이다.

내가 르귄을 처음 알게된 것은 (내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세월의돌을 연재할때) 전민희 작가 덕으로 어스시 시리즈를 추천하는 사담을 읽고나서 였는데, 테하누라는 이름이 너무 판타지스럽고 멋있어서 몇년이 지난뒤에도 계속 기억하고 있었고 나중에서야 쫌쫌따리 모은 용돈으로 사서 읽었다.

이렇듯 오랜세월 애정하는 어스시연대기지만 정작 내게 강한 충격을 주었던건 르귄의 다른 대표작인 헤인시리즈이다. 내가 정말 사랑해마지않는 이 이야기는 출간직후부터 소설의 젠더적 측면에서 갑론을박이 오고갔고, 그에대한 르귄의 사유가 쓰인 것이 책에 수록된 젠더가필요한가_다시쓰기 이다.
르귄의 게센인 대명사 수정전과 수정후(파란글씨) 사유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글로, 젠더적 측면만이 아닌 르귄의 SF작가로서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글이다. 이후 직시하기-누구의물레? 까지 이어지는 그의 통찰력과 질타는 장르소설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장르소설가로서의 르귄뿐 아닌, 이 에세이에서는 작가의 배려로 각 글의 주제가 기호로 표시되어있는데 페미니즘, 사회적책임, 문학, 여행 네가지 카테고리이다.
개인적으로는 여행편의 1430호차, 9호실이 내가 오래전 기억하는 기차여행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여 기억에 남았고, 페미니즘 카테고리의 이야기 세 편이 인상 깊었다.

어느공주이야기 는 1982년 르귄이 참석한 낙태 및 재생산권 행동연맹의 워크숍 컨퍼런스 기조연설문인데, 마지막 문단에서 텍사스 심장박동법 사태가 떠올라 입맛이 썼다.
📎우리는 그 암흑시대로 돌아가지 않아요…(중략) 하지만 우리는 빛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끌 수 없어요. 여러분 모두가 언제까지나 찬란하게, 꺼지지 않고 빛나기를 빕니다.(144p)

왼손잡이를 위한 졸업식 연설과 브린모어 대학 졸업식 축사 편은 이제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여성들에게 전하는 르귄의 조언이다. 40년전의 지천명을 바라보던 르귄이 딸뻘의 스무살 남짓 어린 소녀들에게 건네는 축언처럼 느껴지는 이글들의 내용은 결코 밝게빛날 미래를 덕담하는 내용이 아닌, 쓰고맵고 어둡기 짝이없는 현실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르귄의 응원이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괜히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난 여러분이 스스로의 영혼을 찾고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고통이든 기쁨이든 직접 자기 삶을 느꼈으면 좋겠어요.(282p)
📎우리는 화산이에요. 우리 여자들이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진실로, 인간의 진실로 내놓는다면 모든 지도가 바뀔 거예요…(중략)우리가 다시 침묵속으로 가라앉게 하지 마세요. 우리가 우리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해 주겠어요?(284-285p)

르귄여사가 타계하신지도 벌써 햇수로 4년이 지났다. 그의 에세이는 물론 그의 작품을 읽었던 이라면 더욱 재밌게 읽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으로 다가오는 따스한 통찰과 조언들이 담겨져있다. 올가을도 르귄과 함께, 고양이 파드와 함께, 그리고 그의 소설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글은 황금가지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직접 읽고 쓴 저의 감상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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