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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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이상 나이 차가 나는 사촌 언니의 결혼식이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엄마 손을 잡고 교회 안 나무 의자에 앉았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촌 언니는 턱시도를 입은 남자와 함께 십자가와 목사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목사가 하객들을 향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나와 엄마도 함께 일어났다. 사람들은 ‘복사-붙여넣기’를 하듯 모두 열손가락을 겹쳤고 나는 엄마에게 우리도 해야 하냐고 물었다. 절집 며느리였던 엄마는 절집 손녀인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사방에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로 깍지를 낄 때, 엄마와 나는 뻣뻣이 서서 엄숙해진 그들을 바라봤다. 


에릭 와이너 작가의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속 「3장-신은 개인적이다」 편을 읽으며 이십 년이 훌쩍 넘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음식을 먹을 때만 유대인”이자 “일주일에 한 번씩 히브리 학교(유대인 학교)에 나간” 정도의 가정환경에서 자란 작가는 세계 곳곳에 있는 여러 가지 종교를 직접 체험하며 종교와 관련한 책을 준비한다. 이제 불혹을 넘긴 작가는 여러 종교 중 하나인 뉴욕 북부 사우스 브롱크스에 자리한 가톨릭 프란체스코회에 발을 디딘다. 한 교회 앞에서 크리스핀 수도사가 작가에게 고해실에 들어가 볼 것을 권유한다. 작가는 “난 가톨릭 신자가 아니에요.”라고 물러섰지만 크리스핀 수도사는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결국 고해실에 들어간 작가는 “칸막이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옆모습”을 보곤 “죄송합니다만, 신부님.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네, 그건 상관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어딘가 불편한 목소리”다. 이내 신부는 “지금부터 미사를 집전해야 하는데 이미 지각했다며 삼십 분 후에 다시 와 달라”고 말한다. 작가는 결국 그곳에서 고해를 마치지 못하고 나온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다른 장에서 느낄 수 없는 단어가 떠올랐다. 배척이다. 하필 절집으로 시집온 엄마와 그곳에서 태어난 나는, 낯선 십자가를 보고 두 손을 깍지 낄 수 없었다. 종교가 다르므로 행한, 일종의 배척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엄마와 내가 영향을 받은 종교인 불교는 배척이 아닌 포용을 가르쳤는데. 고작 8살이었던 나는 보호자인 엄마의 말이 우선이었기에 포용하지 못했다. 다르게 보면 엄마의 선택은 배척이 아니라 기치(棄置)일 수 있다. 거부가 아닌 내버려 두기. 그날의 강렬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불교 집안에서 자라 불교 유치원까지 졸업했지만 중학생 때 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작가처럼 “나는 기도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결국 얼마 가지 않아 탈퇴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믿는 종교도 가지각색이다. 그들이 종교를 얼마만큼 깊게 받아들이는지 아닌지는 우리 우정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을 믿든 나를 배척 하지 않는다면 상관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전혀 다른 세계에 홀로 남겨진 기분은 들지 않는다.


작가는 이슬람교 수피즘부터 불교, 가톨릭, 유대교 등과 같은 널리 알려진 종교에서부터 라엘교, 위카 같은 상상력이 풍부한 종교를 샅샅이 탐험한다. 각 종교에 열성을 다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유신론, 무신론, 불가지론을 생각한다. 어느 날은 “유대인인 내가 지금 성당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같은 생각에 빠진다. 마치 내가 중학생 때 처음 들어간 기독교 동아리에서 느꼈던 감정처럼. 여덟 살 때 십자가 앞에서 모든 사람이 기도할 때 기도하지 않고 뻣뻣이 고개를 들고 있을 때처럼. 


방방곡곡 종교 여행을 마친 작가는 마침내 깨닫는다. “나는 신을 찾아내는 대신 신을 만들어내야 한다. (...)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구축하고 조립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라고. “나는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항상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라는 문장에도 밑줄을 친다. 지금처럼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배척하지 않는 자세로 주변에 머물기 바란다. 작가가 행한 직접 경험 대신 간접 경험을 통해 그들이 가진 지혜를 엿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만의 ‘DIY 종교’는 계속 조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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