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각이 좀처럼 몸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흘러야 할 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 고인 물은 불지도 줄지도 않는다. 맑은지 탁한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새로운 물을 맞아야 한다. 살면서 가끔 맞닥뜨리는 이 순간, 깊은 생각으로 둘러싸인 ‘철학’을 떠올린다.

하지만 내게 ‘철학’은 가림막을 친 공사 현장 같다. 무슨 일을 벌이는지 자세히 알 수 없고 어딘가 위험해 보이며 공사 관계자 외에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어 접근하기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쓴 에릭 와이너는 가림막 주변을 맴도는 드론 같다. 가림막 속 공사장을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본다. 그렇게 알아낸 것들을 가림막 속 세상, 즉 ‘철학’을 궁금해하는 나 같은 이들에게 전달한다.

내 삶은 가깝던 인간관계가 무너질 때 가장 또렷해진다. 그럴 때면 발 딛고 있는 세상이 새롭고 남아 있는 사람들과 만든 시간이 다시 보인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곱씹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고민한다. 벌거숭이로 전신 거울을 보는 것만 같은 시간을 계속 헤집는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지혜로워질까?’ 책 속에서 만난 여러 철학자들 중 세 명으로부터 ‘지혜로워지는 방법’에 관한 답을 찾아본다.


쇼펜하우어-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세상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세상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생각이 몸 안에 가득한 상태만큼, 나를 향한 끝없는 되새김질만큼 세상을 바라본다. 타인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은 모든 이들에게 똑같지 않다. 수십 명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더라도 수십 명이 보고 느낀 현실은 모두 제각각이다.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 있다.”라고도 말한다. 에릭 와이너는 ‘데이터를 정보로,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는 최근의 상황을 예시로 들며 쇼펜하우어의 말을 오늘날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묻는다. 방대한 데이터에는 각종 SNS 채널로 노출한 개인들의 생각도 포함한다. 그런데 정말 스스로 생각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복사-붙여넣기’한 것은 아닐까?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인지조차 모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생각이라 착각하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면 그들의 생각이 내 생각을 밀어낸다.’라는 문장이 주의사항처럼 서늘하다. 


에피쿠로스-쾌락은 향락이 아닌 평정(平靜)이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무엇이 됐든 이전보다 나아진 상황을 만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생의 목적은 욕망일까? 욕망을 해결하면 만족할까?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라고. 욕망을 채우기보다 두려움을 비워야 한다. 이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곧바로 두려운 것들을 생각한다. 불인정, 실업, 죽음… 단어만 다를 뿐, 공통적인 감정이 있다. 상실감이다. 상실감을 비우고자 여러 생각을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깨닫는다. 상실감을 미리 상상하지 않기. 그러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충분한 만족 상태에 다다라 에피쿠로스처럼 평정심에 이를 수 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만족하자. 그리고 감사하자.


에픽테토스-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스트레스가 휘몰아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한 글자로 된 세 가지 중 하나를 찾는다. ‘잠’ ‘술’ ‘책’. 스트레스 받는 일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비책이자 ‘정신승리’를 돕는 아이템이다. 스토아학파의 대표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런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까무룩 잠이 들거나 달뜬 음주를 즐기거나, 여기 아닌 다른 세계인 책 속으로 빠져 일단 스트레스로부터 떨어진다. 우리는 살아가며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감정에 휘말릴 수 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생각과 충동, 욕망, 혐오감, 즉 우리의 정신적 감정적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다시 스토아학파가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하지만 나는 이런 고고한 말을 확신에 차서 할 만큼의 그릇이 되지 못한다. ‘갑자기’ 같은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스토아학파가 다시 대답을 한다. “프리메디타치오 말로(Premeditation Malorum)” 즉,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상”을 권한다. 스토아학파의 또 다른 철학자 세네카는 말한다. “인생이라는 화살이 어디로 날아갈지를 예상해보라.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유배, 고문, 전쟁, 난파 사고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라” 두려움을 구체화할수록 두려움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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