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관한 절대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자유론》을 읽었다. 여러 책들에서 숱하게 인용·언급되는 고전 명저들을 직접 읽어보자는 개인적 도전 과제중 첫번째 도서이다.
해제와 주를 포함해 25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판형이 작아 그렇게 긴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책보다 읽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일단 문장 자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번역의 문제인지 밀의 문체가 원래 그런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번 읽어서는 얼핏 이해하기 힘든 긴 호흡의 문장들이 많았다. 그런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당시의 영국 및 세계 정세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던 점도 독서의 어려움에 한몫 더했다. 반면 읽기 쉬워서 술술 읽혔다는 사람들도 있는걸 보면, 그저 나의 독서력이 부족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문장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았지만 책 전체를 놓고 따져본다면 주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고민한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은 다른 사람에게 명백한 해가 되지 않는 한, 각 개인은 절대적인 자유를 최대한으로 누려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리고 자유의 본질적 가치에 근거하여 그 원리를 뒷받침한다. 이론적 논의를 마친 뒤에는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까지 제시하면서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절대적 자유에 대한 밀의 주장은 얼핏 극단적 자유주의로 오해할 여지가 있어보인다. 하지만 해제에서 지적하듯, 밀의 자유는 '방향이 있는 자유'이다. '좋은 삶'을 추구하는 방향에서의 자유만 인정하고, 자유를 포기할 자유까지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밀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듯 밀의 절대적 자유란 극단적 자유가 아닌, 방향이 제한된 자유이다. 즉 자유란 모든 개인이 '좋은 삶', 즉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전제 위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밀이 '실패할 자유'도 역시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어떤 사람의 선택이 결과가 나쁠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 대해 조언이나 충고를 할 수 있을 뿐, 선택을 강제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은 좋은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실패의 위험을 무릅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정당하게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논의를 하다 보면 결국 '좋은 삶'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자유론》에는 이와 관련된 명쾌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몇몇 구체적 사례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밀은 자유의 원리를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힌다. 그래서 미성년자 혹은 미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 '좋은 삶'에 대해 충분히 성숙한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여겨 제외시킨다. 오히려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보호할 수 있도록 '선의의 독재'가 필요하다고까지 얘기한다. 밀은 이성을 믿은 것이다. '좋은 삶'의 기준은 성숙한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이성이 충분히 성숙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그 기준이 보편성을 띌 것이라 믿은 것이다.
'성숙한 이성에게 보장되는 절대적 자유'라는 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밀이 제시한 자유의 원리는 오늘날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원리가 실제로도 지켜지고 있는지 하는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자유에 대한 밀의 주장 자체에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각 사례에 대한 판단에는 이견이 있지만, '절대적 자유의 소중함'에는 이견이 없다.
'자유'라는 주제에 대한 밀의 심도 있는 고민은 매우 소중하다. 그는 '자유'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했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주장했으며, 예상되는 질문과 반론에 답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생각을 끝없이 뻗어나가고, 생각의 가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발견하는 지적 경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기쁨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주제에 대해 이처럼 깊게 숙고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성숙과 발전을 인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론》에 나타난 깊은 고민과 우리에게 던져주는 물음들은, 깊은 울림으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 p.20 |
| ○권력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을 바로 자유라고 불렀다. | | p.25 | | ○집단의 생각이나 의사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 개인의 독립성에 함부로 관여하거나 간섭해서는 안 된다. | | p.27 | | ○어떤 행동을 둘러싼 생각이 이성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특정 개인의 선호에 지나지 않는다. | | p.32 | | ○인간 사회에서 누구든―개인이든 집단이든―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 뿐이다. …이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없다. | | p.33 | | ○아직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위험 못지 않게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 | p.44 | | ○어떤 생각을 억압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행위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류에게까지―그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대하는 사람에게까지―강도질을 하는 것과 같은 악을 저지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
| p.46 |
|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시대가 개인보다 더 나을것 없음은 시대 그 자체가 증명해준다. | | p.47 | | ○과거가 현재에 의해 부정되듯이 현재는 미래에 의해 번복될 것이다. | | p.49 | | ○우리 생각에 대해 철저한 부정과 비판 과정을 거친 뒤, 그래도 살아남은 생각에 입각해서 어떤 행동에 나선다면 그 행동의 타당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 | p.65 | | ○진리는 한 번, 두 번 또는 아주 여러 번 어둠에 묻혀버릴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때로는 좋은 환경을 만나 박해를 피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모든 박해에 맞서 싸워 이길 만한 힘을 가지게 될 때까지, 그것을 거듭 어둠 속에서 태양 아래로 끄집어 내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이것이 진리가 가진 힘이라면 힘이다. |
| p.75 |
| ○지성을 단련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를 꼽으라면 단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의 근거를 학습하는 것이다. | | p.113 | | ○그저 관습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다. | | p.147 | | ○우리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 대해 품고 있는 유쾌하지 않은 우리의 기분을, 그 사람의 개별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개별성을 발휘한다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드러낼 권리를 가지고 있다. | | p.155 | | ○결국 어떤 행동이 다른 개인이나 공공에게 명백하게 해를 끼치거나 아니면 해를 가할 위험성이 분명할 때, 그 행동은 자유의 영역에서 벗어난 도덕이나 법률의 적용 대상이 된다. |
| p.188 |
| ○국가가 어떤 물품에 세금을 부과할 경우, 그것을 사용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물건인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 | p.191 | | ○자유의 원칙이 자유롭지 않을 자유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 | p.201 | | ○자유를 비상하게 존중하는 마음과 자유를 존중하는 마음이 비상할 정도로 부족한 현상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 p.211 | | ○국가의 힘은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에게서 나온다. | | p.232 | | ○자유란 단순히 수단적·기능적 차원에서 소중한 것은 아니다. 행복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다. (해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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