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목부터가 도발적이고 통쾌하다. 책 제목과 동명의 글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가 블로그 등에 쓴 글 중에서 페미니즘과 관련한 글들을 모아둔 것이다. 글을 쓴 연도도 다르고 매체도 달라서, 한권의 책으로서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다. 그리고 전문 번역가가 번역을 하였는데, 외래어에 대한 표기가 무척 신경쓰인다. 이딸리아, 바스띠유, 쌘프란시스코 같은 식으로 된소리 표기를 무척 많이 사용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외래어를 표기할 때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모를리는 없는데 왜 그렇게 표기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글의 통쾌함에 비해 중간의 글들은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마지막에 있는 글은 페미니즘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좋은 글이라 생각된다.
비교적 온건한 페미니즘 서적과 달리, 이 책은 정통적 페미니즘의 날카로운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익숙하지 않다면 약간의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 남성 독자로서, 남성이라는 젠더 자체가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적 분위기로 인해 여성이 느끼는 근원적 불안감은 충격적이기도 했다. 저자가 나에게 던진 현실은 생각보다 처참했다. '그정도인가'하는 생각으로 우리나라를 돌이켜 비교해봤을때, 여성의 인권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앞서있는 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자가 말해준 통계와 통계 밖의 진실들은, 남성이라는 젠더와 문화에 대해 알 수 없는 죄책감까지 가져왔다. 근원이 불분명한 그 죄책감에 대한 자기방어로, 그녀의 글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가 무심코 떠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미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는 않음을 인정함으로써 죄책감을 감싸안고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선언은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에 씌워진 부정적 의미를 걷어내고 현재에 필요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그 용어를 되찾겠다는 뜻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페미니즘은 제로섬 게임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 문제 자체에서의 해방을 위해 우리에게는 아직 페미니즘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 속의 소중한 글
| p.17 |
|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 | p.23 | | ○나를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은, …나를 자신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채워야 할 빈 그릇으로 본다. | | p.28 | |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합한 신조어 '맨스플레인'은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 | p.45 | | ○우리는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 | p.52 | | ○대학은 여학생들에게 공격자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집중할 뿐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 공격자가 되지 말라고 이르는 일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없다. | | p.60 | | ○여성 해방운동은 남성의 힘과 권리를 침해하거나 빼앗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묘사되곤 했다. 마치 한 번에 한 성만 자유와 힘을 누릴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인 것처럼. |
| p.95 |
| ○게이와 레즈비언은 어떤 특질과 역할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가 하는 질문을 진작부터 제기해왔고, 그런 물음은 이성애자에게도 해방적일 수 있다. | | p.143 | | ○최악의 비평은 자신이 최종 선고를 내리고 싶어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계속 침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최고의 비평은 언제까지나 끝날 필요가 없는 대화를 시작하려고 한다. | | p.183 | |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 | p.212 | | ○모든 혁명은 무엇보다도 생각의 혁명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