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여자들이 신체적 고통을 호소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가끔 뉴스로 접했던 산후우울증.

이 모든 일들은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이 없는 나에게는 그냥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산후정신증'이라는 단어는 낯설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눈에서 악마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이 도착하기 전, 혼자서 어떤 내용일지 상상해보았다.

혹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성애'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닐까?

(모든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것도 아니고, 모성애가 아이를 낳는다고 무조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성애를 느끼는 남들과 비교하며 자기 아이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너무 슬픈 나머지 악마를 봤다고 여긴 것이 아닐까, 싶었다.)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출산과 관련 있는 전통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런 설명으로 시작한 것은 아마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지키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했기 때문에 악마에게 쫓기게 된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이 원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불안은 아마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첫 연애의 아픔까지 모두 담겨 있는 과거에서 기인했다고 생각되었다.(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자기가 겪은 불행한 경험이 아이의 DNA에 각인된단 이야기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인지 임신을 확인하고 초음파로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단순히 내 생각일 뿐이지만 아마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정신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꼭 지켜야 할 필요가 있지 않지만)을 지키지 않고 외출과 여행을 계획하지 않았을까.

물론 아이의 건강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 원래 건강하던 사람이어도 출산을 하고 난 다음 다시 예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기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기의 몸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고 느껴져 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하라는 대로 하는 포유동물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이 부분은 책에서 가장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도 중요한 존재지만, 출산을 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만 우선적으로 챙기라 말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너무 삭막한 환경이 글을 읽는 나에게도 고통처럼 다가왔다.




모든 내용이 아니라 일부가 담긴 가제본이었기 때문에 정신병원에서의 일보다 과거와 출산 직후의 일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출산을 하고 난 다음 '나'의 정체성보다 '아이의 엄마'로의 정체성만 남는단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것을 이렇게 강렬한 표현으로 마주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잊기 힘들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모든 이야기가 담긴 책으로 읽어봐야겠다.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하라는 대로 하는 포유동물처럼 느껴졌다.

"저는 동물이 아니에요." 그들 중 한명이 말했다.
"왜 제 말을 안 듣는 거죠?" 또다른 여성이 말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우리의 정체성은 뭉뚱그려졌다.우리는 하나의 독립체로서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켰지만, 누구 하나 이런 경험을 피해갈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