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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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 경선. 십일 개월 육 일 차이가 나는 자매. 그러므로 둘 다 겨울 출생일 수밖에 없는. 어깨가 떡 벌어진 아기라서 아들일 거라 짐작했지만, 딸이어서 실망을 안겨준 첫째 안나. 큰 체구, 손, 발 모두 친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이나마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가 송두리째 빼앗은 첫째 딸. 경선은 안나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어머니의 몸을 벗어난다. 달갈형 얼굴에 예쁘장한 얼굴. 외형부터 너무나 다른 둘은 이후 살아오는 과정도, 육십을 넘어선 어느 날에도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 둘의 삶이 다시 겹치는 건 우연이다. 경선의 딸인 다은의 결혼식조차 가지 않은 안나가, 다은의 딸인 다니엘(유나)과 경선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까지 가게 된 데에는 경선의 갑작스러운 병치레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던 자매지만, 어찌 서로의 속을 다 알겠는가. 엇갈리고, 잘못 미루어 짐작하고, 서운해하고, 빼앗겼다 생각한 일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럼에도 혈육이라는 까닭으로 다시금 엮이고야 마는 하늘의 인연.

나이들어가는 여성의 육체에 대해, 자매라는 존재에 대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 대해 은희경 작가만의 시선과 문장으로 적어나간다. 우리의 몸이 통과하는 시간과 공간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어느새 핀 꽃을 보다가 그만 넘어져 버리고 마는, 젊은 시절과 다른, 늙어버린 몸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게 되는 지를 말하는 소설.

작가는 '여성 노인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려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 자꾸만 무력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돼서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때 내가 상상했던 여성 노인들의 삶이 무거워서였던 것 같다. 이번에는 농담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힌다. 작가도 십 여 년이 흐르는 동안 몸이 늙었고, 그때 그려보던 노인의 삶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기에 좀 더 가볍게 다룰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 오지 않은 늙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건 젊기 때문일테다.

여전히 좋은 문장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쭉 밀고 나가는 작가님이 있어서 좋다. 그 어느 때보다 인덱스를 촘촘히 붙일 수밖에 없었다.

예순다섯 살 생일날 아침, 안나는 아파트 오층 창가에 앉아 버스 정류장이 있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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