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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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변장술은 눈물겹다."
동북아에서 가장 큰 공항인 인천공항.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이 드나드는 이곳에 어찌 들어오긴 했는데 몇 달 째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민 심사 통과를 기다리며 의자에서 쪽잠을 청하는 외국인이 그들이다. 책은 버샤의 가족 6명이 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난민 심사를 기다리며 생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주된 화자인 버샤는 실어증이 있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화자이면서도 말을 못하는 주인공의 아이러니는 한국에 왔으면서도 한국에 온 것이 아닌 상황을 대신 보여주는 듯하다. 버샤는 말을 줄인 대신 눈과 귀로 상황을 세심하게 살피고 속으로 고민하고 관찰한다. 어차피 말을 할 줄 알았더라도 낯선 땅에서의 거주를 허락 받기 위해서는 쓸 데 없는 말은 줄이고 할 말을 삼키며 벙어리처럼 지내야함을 잘 아는 인물이다. 줄거리로 보면 버샤는 분명 20살임에도 서술하는 문체를 보면 '일찍 철 든 아이'를 넘어서 40대~50대 부모 나이의 사람이나 하는 생각들 같아 조금 아쉬운 점은 있다.(어떤 애가 동생을 보며 "어린 것이 놀이와 휴식을 용케 가릴 줄 안다."라고 탄식할까.) 그렇더라도 난민 문제 뿐만 아니라 열악한 무슬람 여권, 가파른 물가 상승,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성, 로봇의 일자리 대체 등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같이 고민해봐야 할 사안들을 담고 있어 교과 시간에 활용하여 함께 읽은 후 토론하기 좋은 책이다. 버샤와 진우는 각자의 사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별과 달을, 우주를 그리며 지구에서의 삶을 잠시나마 잊으려 한다. 그럼에도 어느 목사의 이야기처럼 아무리 천국이 좋아도 지금 당장 가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잘 살아보려 노력하는 '애씀'은 두 주인공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을 덮으며 세상 곳곳에 있는 내가 아는, 또 내가 모르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안식을 기대해 본다.

*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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