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속 주인공들을 둘러싼 상황은 최악이거나, 최악에 가깝다.
그들은 해고 통보를 받거나, 모욕적인 순간을 견뎌야 하거나, 소중한 인물을 잃거나, 그 모든 것을 동시에 겪는다.
이 곤란한 상황에서 우리의 주인공들에겐 딱히 '선택권'이라는 것이 없다. 애초에 선택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이기도 하니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자 최신작이자 표제작인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평범한 레즈비언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상적인 무례에 대해서 이보다 더 잘 그려낸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이 '정상' 궤도를 걷고 있는 (특히 친밀한 사이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다채로운 방식으로 무시될 수 있는지를 읽고 있노라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여자를 사랑하기를 선택하겠다는' 표현(여자를 좋아한 게 아니라 사랑한 사람이 여자일 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점이 수지가 담대하게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레즈비언인 친구를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밀쳐낸 친구의 변명( "그러니까 내 말은, 아무래도 너한테는 결혼이란 게 더 복잡하게 느껴질 테니까 중요한 공부하는데 괜히 심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는 거야" )등등...
그러나 아무리 거절당하는 게 일상이라고 해도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가장 절친한 친구 무리에서도 끝끝내 감춰져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 도대체 어떻게 익숙해질 수 있을까. 왜 내 여자친구는 친구들이랑 다르게 하필 바다 동물 잠옷을 입었을까, 그런 사소한 것마저 마음 아파지는 순간이 왜 있어야 하는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고마웠던 점은 슬픔에 빠져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겠다는, 어떤 선언에 가까운 의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이 우리에게 아주 가끔 친절할 때, 그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과 같다.
여자들은 상처입었음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자들은 계속 살아간다.
조우리 작가도 지치지 않고 계속 소설을 써주기를, 그의 작품을 꾸준히 따라 읽은 독자로서 깊이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