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
로웅 웅 지음, 이승숙 외 옮김 / 평화를품은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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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서적은 아버지가 캄보디아의 헌병대장으로 근무하며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던 5살 소녀 롱웅 웅의 자전적인 수기로서 1975년 4월부터 베트남에서 태국으로 밀항하는 1979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잔인하고 참혹했던 킬링필드 학살의 현장에서 부모와 가족을 차례로 잃는 과정과 5살 소녀가 크메르루주 치하의 수용소에서 살아간 비참한 내용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어 크메르루즈의 잔혹성과 캄보디아 내전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서적으로 평하고 싶다.

 

1975년 당시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는 넓은 아파트에서 9가족이 프놈펜에서 행복하게 살던 시기 헌병대장으로 근무하던 아버지로 인해 부족함 없이 살던 가족은 4월 17일 크메르루즈 군이 프놈펜에 입성하면서 그날 저녁 피란 준비를 하고 바로 프놈펜을 떠난다외삼촌이 사는 크랑트루오프의 작은 집에서 17명이 2개월가량 거주하다 어머니가 중국혈통이고 아버지의 직업이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하여 산골마을로 이주했으나 식량 부족현상으로 인해 그해 11월 로레아프로 이주하여 신 인민으로(이주 인민생활한다노동력이 있는 두 오빠와 큰 언니는 수용소로 끌려가 군인들을 지원하는 노동을 담당하고 남은 가족은 감시를 받으며 농사를 지으며 부족한 배급을 받으며 생활한다처음에는 킴오빠가 촌장집의 아들들의 비위를 맞추며 놀아주며 식량을 구해 오지만 그마저도 끊기고 많은 이주민들은 독이 든 음식을 먹거나 굶주려 생을 마감한다. 1976년 8월 이질로 인해 수용소에 끌려갔던 케아브 언니가 사망하고 그해 12월 아버지가 처형을 당한다다음해 5월 어머니의 결정으로 킴오빠초우언니로웅은 고아라고 속이고 고아들만 받아주는 수용소로 들어가게 된다몸이 약한 언니에 비해 성격이 강하고 체력도 뛰어났던 로웅은 병사를 양성하는 수용소로 다시 이송되고 군인들의 사기진작으로 위한 춤노래를 하는 댄스부대로 들어간다. 1978년 5월 몸이 부어 몇 시간 거리의 병원을 걸어가니 병원에는 남은 가족 모두가 영양실조로 와 있어 눈물겨운 가족 상봉을 하게 되는 데 그것이 어머니와 여동생 게악과의 마지막 만남이 된다베트남의 공격으로 킴오빠초우언니와 프루사트시에 있는 난민 수용소로 피란을 떠나 그곳에서 위탁할 가정을 만나 두 오빠들을 기다린다그곳에서도 크메르루주군의 공격으로 많은 난민들이 사상을 당하고 마침내 1979년 4월 멩오빠와 쿠이오빠를 만나 식량을 모은 후 외삼촌댁으로 이동한다그곳에서 결혼한 큰오빠 멩 아내의 가족이 베트남으로 피란 갔다는 소식에 멩오빠 부부는 베트남으로 먼저 가고 며칠 후 돌아 온 멩오빠는 밀항에 필요한 돈이 부족해 세 명만 밀항이 가능하다며 로웅을 데리고 베트남을 거쳐 태국으로 밀항한다그곳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오빠와 함께 미국의 후원자의 지원으로 미국 버몬트주로 이주하며 킬링필드 학살의 현장을 떠나게 된다.

 

저자는 크메르루주 학살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캄보디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사망한 크메르루주의 정권 장악그 학살의 원인이 되었던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100만 명의 사망과 크메르루즈와 북베트남 공산당과의 동맹이 깨지며 나타난 중국과 소련의 대리전격의 국지전으로 발발한 베트남의 침공으로 캄보디아는 처절하고 참혹한 시간을 보냈다그 충격적인 내용이 1985년 대학시절 봤던 영화 <킬링필드>의 장면과 서적의 내용이 오버랩 되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되었다정권욕과 강대국의 이해타산에 의해 동남아시아 약소국의 아이들을 비롯한 죄 없는 국민들은 무차별적인 학살을 경험하였다그 잔인한 학살을 교훈 삼아 다시는 지구상에서 전쟁이란 단어가 사라지길 기원한다.

이서적은 크메르루주의 만행과 잔인한 학살을 고발하며 지구의 모든 국가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는 서적으로 많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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