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의 선택 신나는 책읽기 67
이정란 지음, 지문 그림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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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 온 적이 있다. 병아리들은 귀엽고 뽀송하고 예뻐서 지나가는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병아리 두 마리는 흰색 비닐봉지에 담겨 우리 집으로 왔다. 작은 종이에 모이 한 스푼을 담아 세모 모양으로 접은 그들의 밥과 함께였다.

새 학기가 시작하던 3월이었고 날씨는 아직 추웠다. 낮 동안 병아리들은 삐약삐약 예쁜 목소리로 재잘거렸지만 밤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삐약삐약 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엄마 품이 없어서 너무 추워요!’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병아리가 담긴 상자에 손을 넣었다. 서로의 품을 파고들며 부들거리던 병아리들은 내 손의 온기를 나눠 주자, 이내 조용해졌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잠들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손을 살금살금 빼면 병아리들이 춥다고 울어댔고 다시 손을 얹으면 조용해졌다. 손이 저려 깨고, 손을 넣고 깨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벌떡 일어나 상자를 들여다 보는데 병아리들이 없어졌다. 엄마에게 병아리의 행방을 물었더니, 엄마는 방바닥에 덮어 둔 이불을 걷어 보였다.

“병아리들이 너무 추웠는지, 사지가 다 굳어가더라.”

뒤늦게 보일러가 틀어진 방바닥으로 병아리를 옮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아리들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추워서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잠을 자버린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향해 엄마가 말했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들은 원래 수명이 짧아. 너희들 코 묻은 돈 뺏어가려고 병들고 약한 병아리들만 파는 거야. 이거 봐. 병아리 모이도 한 스푼도 안 되겠다. 금방 죽을 거 알고 이렇게 먹이도 조금만 넣어주는 거야.”

“그래도 내가 따뜻하게 해 줬으면 이렇게 빨리 죽지 않았을 거 아냐.”

병아리가 우리 집에 온 순간 그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병아리들을 위한 집도, 따뜻한 온도 조절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덜컥 데려온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 병아리들이 죽은 건 아무리 미루고 미루어도 결국, 내 책임이었다.

<버찌의 선택>은 두 명의 주인에게서 두 번이나 버려진 유기견 버찌가 세 번째 주인을 선택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주인이라는 단어는 ‘주인 主’에 ‘사람 人’ 자를 쓴다. 책임을 지고 주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반려동물은 주인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주인은 반려동물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생김새의 동물을 데려올지, 밥은 얼마나 줄지, 사료는 어떤 걸 선택할지, 예방접종을 맞힐지 말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지 말지, 심지어 중성화 수술까지. 반려동물의 생명과 생활에 직결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과 결과가 누적되면서 주인은 알게 모르게 ‘신’과 같은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주인은 단순히 선택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이 주관하는 전반을 더 나은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반려동물에 대해 주인 의식을 가지고 키우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바다에서 만난 작은 물고기도, 들에서 본 귀여운 달팽이도, 그저 작고 예쁘고 귀엽다는 이유로 데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동물들이 생각보다 커지거나, 늙고 못생기고, 생기를 잃게 되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생각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그 동물을 둘러싼 온 우주를 내 우주로 끌어들여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 내는 일인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일이다.

모든 처음은 서툴고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랑은 당연하게도 쉽지 않은 것이어서, 배우고 또 배우며 사랑과 책임이 함께하길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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