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도감 - 학교생활 잘하는 법
김원아 지음, 주쓰 그림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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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줘야 한다. '종이에 풀을 발라서 책에 붙여요.'라는 문장에는, 거기에 담긴 수많은 행동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아이들은 풀 뚜껑을 열고, 풀을 밀어 올리는 나사를 돌린다.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린다. 그러곤 자기 손가락만큼 풀을 밀어 올린 뒤 이야기한다.

  "꺄하 이것 봐! 나 이만큼이나 길다?"

  그걸 본 아이들은 너도나도 풀을 길게 뽑기 시작한다. 그러고서 종이에 풀을 바른다. 힘 조절이 잘 안돼서 풀은 여기저기 으그러져서 튀어나온다. 아이들은 그걸 또 손으로 만지거나 문지르는데, 손에 있던 먼지가 달라붙거나 종이가 찢어져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니 가르쳐야 한다. 


  "여러분 일단 풀 뚜껑을 열고 책상 한 쪽에 잘 놓아요. 풀 밑에 있는 노란 조절 나사를 반 바퀴만 돌려요. 손톱 끝에 하얀 부분 길이만큼 살짝만 올라오게 적당히 밀어올려요. 너무 많이 빼면 풀이 뭉개져서 더러워져요. 그리고 풀을 발라요. 벅벅 문질러서 바르는 게 아니고 테두리를 따라서 바르면 풀도 절약되고 손에도 덜 묻어요." 


  아직 끝이 아니다.

  

  "잠깐! 풀 뚜껑! 뚜껑을 꼭 찾아서 닫아야 해요. 안 그러면 풀이 미라가 돼요."

  

  '풀 바르기'라는 행동을 완성 시키기 위해선, 거짓말 살짝 보태서 100번 쯤은 이야기해야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선생님 풀 뚜껑 없어졌어요!" "선생님 풀 때문에 종이가 찢어졌어요!" "선생님, 풀이 삐져나와서 손에 달라붙어요!"하며 울상이 된다. 마음속으로는 '아까 쌤이 말할 때 뭐하고 있었어!'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꿀꺽 삼키고 가르친다. 내가 길을 잘못 찾아가도 '잘못 진입하셨습니다. 우회하세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경로를 재검색합니다.'라며 몇 번이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처럼 (물론 내비게이션보다는 더 다정해야겠다. 화 안내는 것도 어려운데, 친절하고 다정하게라니! 역시 쉽지 않다). 




  <내 친구 도감>은 다정하고 친절하게 학교 생활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책이다. 어떤 교실에서든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한가득 담겨 있어서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해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선생님이지만, 여전히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할 때면, [손을 들까 말까 망설이는 친구]가 된다. 결국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이렇게 다른 우리가, 각자의 다름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 이래서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우르르 화장실에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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