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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가계부 ㅣ 상상도서관 (다림)
윤미경 지음, 김동성 그림 / 다림 / 2025년 7월
평점 :
1983년에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이야기를 꺼내놓자면 나이가 밝혀지겠지? 호홋 무언가 떠올리기만해도 가슴이 몽글해지는 때가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몽글몽글해져서 읽을 법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매우 궁금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와 스마트폰 대신 꺼내어 함께 펼쳐보고픈 책 되시겠다.
조금 더 자세히 펼쳐볼까?

이야기는 할머니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한다. 가족들은 모여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1983년부터 쓰여진 할머니의 가계부와 마주하게된다. 그렇게 더듬게된 서로의 추억 속에서 주인공은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제게 준 쓸모를 알 수없는 광목주머니 속 회수권과 500원 지폐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자꾸 나이를 밝히게 되어 민망하지만, 주인공의 할머니가 네 아이를 홀로 키우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내자면 좀 어렸고 국민학교를 입학하기 직전쯤이 되겠다. 그래서 그 시절의 풍광이 절로 그려졌다. 내가 좋아하는 책 <비나리 달이네 집> , < 책과 노니는 집 > 등에 그림을 그리신 김동성 작가의 손으로 펼쳐낸 80년대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따듯해서 알고 봐도 또 모르고 봐도 너무나 좋기만한 그림이다. 이때 이랬구나 살펴볼 수 있게 친절히 그려낸 삽화덕에 사회교과를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나온김에 그림을 좀 살펴볼까?



주인공의 할머니가 '할머니'가 아니던 곱던 시절로 돌아간 주인공은 할머니의 고단하지만 한켠 행복해보이기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도대체 언제 주무시는지 알 수없던 그 시절의 어머니의 모습, 진짜 슈퍼 우먼이었던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에서 주인공은 이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낀다. 쪼글할매할배들에게도 이렇게 곱고 아름다웠던 때가 있었구나 싶었던 그 옛 이야기가 요즘 친구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매우 궁금해졌다. "할머니도 엄마가 있어?" 라고 묻던 내 어린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애가 넷인 아줌마를 누가 써 준다냐. 아무튼 꿈이야 뭐든 못 꾸것냐. 퍽퍽한 가래떡 먹음서 찍어 먹는 꿀 같은 거제. 달짝지근하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께로. 암튼 내가 니 덕분에 웃는다잉. 호호호"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다시 시작된 재봉틀 소리 속으로 사라졌다. 할머니의 허리도 재봉틀 안으로 점점 굽어지고 있었다. 98쪽
미래에서 온 손녀와의 대화를 통해 할머니가 퍽퍽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못이룬 꿈을 생각하며 웃던 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웃음소리가 재봉틀 속으로 사라지고, 그 허리가 점점 굽어질 때에 그네가 키워낸 아이들은 키가 자라고 허리가 곧아졌겠지 하며 가슴이 아렸다. 개인적인 경험이 들어가서 더 그럴수도 있을듯. 나는 할머니가 키워낸 가여운 손녀였다. 그래서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었기도 했고.
세대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해결방안으로 꼽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다. 이해는 '공감'에서 시작이 된다. 그랬구나, 그렇게 살아왔던 거구나 뭐 알고 느껴야 이해가 되는 것이다. 할머니와 어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주인공은 이 과거여행을 하고 난 뒤 마음가짐이 달라짐을 느낀다. 주인공은 비로소 그 세대를 알게 되었고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대할 때 서로가 참 많이 다르고 답답함을 느낀다면 속터넣고 우리는 이렇게 살았고,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들려주고 보여줘야할 일이다. 덮어놓고 비난만 한다면 갈등은 사그들지 못할 것이다.
치매할머니의 미경아~미경아~도, 큰고모의 요즘 애들은 쯧쯧쯧~도, 아빠의 무서웠던 이마 흉터도... 알고 나니 다 애틋한 걸. '응답하라' 보다가 우는 내게 아이가 "엄마, 울어?"하며 등을 쓸어줬던 그 때, 우리 아이가 초6이였던 것 같다. 그정도쯤의 나이라면 이 책을 함께 보며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며 울지도 모를 엄마를 등 토닥여줄 수 있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내가 제일 좋았던 소리는 ‘선숙아, 집에 있니?‘,‘선자야, 놀자!‘ 라며 고모 친구들이 고모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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