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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평점 :

기말시험 준비로 한창 정신없을 때 김종광 작가가 8년 만에 선보인다는 소설집 < 놀러가자고요 >가 내게 왔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매우 바쁜, 참으로 이상스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시험이 코앞이라고 주야장천 책상에 코를 박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할 것 다하고 놀 것 다 놀면서 정신은 그 어디에도 제대로 가닿지 못하던
때. 요즘을 사는 사람들은 다 "시험이 코앞"인 상태인 걸까? 나만 시험이 코앞이라 이리 정신없나 앞뒤 보질 못하나 그랬더니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시험이 있든 없든 요즘은 다들 그렇게 정신 빠지게 바쁘게 살아간다.
그래서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가끔 바빠죽겠다는 소리가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규칙적으로 쏟아질 때쯤 책을 읽는다. 마음이 느슨해지는
책을.
글쓴이 김종광은 나랑도 나이차가 많지 않다. 놀라울 일이다. 내가 그렇게나 늙었다니. 씁쓸. 푸핫.
<문학동네> 여름호로
등단했고 중앙 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당선되어 신동엽창작상과 제비꽃 서민소설상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 이력에서 새겨 보는 것은
이전 작품명 정도였는데, 왠지 1971년 생이라는 이야기에 이력을 좀 살펴보았다. 등단한 작품이 희곡이라... 책을 읽고 나서보니 작가와 희곡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 뽀송뽀송해지는 책표지에 가볍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설렘으로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 첫 꼭지부터 좌절이었다. 바둑 하는
어떤 되바라진 꼬마 이야기로 <놀러가자고요>는 시작된다.
화자는 아이로 시작되었다. '장기호랑이' 첫 장부터 요거요거 성격 꽤나 쌀쌀맞겠구만 했던 녀석.
바둑에 열정이 있는 건 알겠는데 이
꼬마는 대체 뭐지? 아니아니, 김종광 작가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독특한 문체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두 꼭지쯤 넘어가니 이 독특한 낯섦에
홀려드는 날 발견하게 되었다.
<놀러가자고요>는 도시에 사는 바둑 꼬마로부터 시작해 시골을 휘돌다가 다시 꼬마의 한숨 이야기로 끝난다. 이 소설집은 각자
떨어진 이야기로 봐도 좋고 한 통에 넣고 봐도 근사하다.
한 집 걸러 또 한 집, 멀리 뵈는 시골풍경은 그렇게 은은하고 조용한 봄 세상으로
푸근하다. 또 어느 한 집이라도 들어가 툇마루에 앉으면 이 사람 저 사람 모여들어 세상 시끌벅적한 곳이 되어 강렬한 사람 냄새를 풍기는 여름
세상이 된다. 김종광 소설집을 나는 그렇게 봄처럼 여름처럼 어느 행간에서는 부처 옆구리 같은 미소를 지었다가 또 어느 짬에서는 동네 하나쯤
있다는 미친 여자처럼 머리 흔들며 웃어젖혔다.
진짜 이 작가,
드립력 최고다.
이렇게 도톰한 책을 읽다가 선량한 마음으로 웃어본 적도 요즘 들어서는 드물다.
글투가 내 스타일이다. ( 내 스타일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까칠하면서도 유쾌한데 살펴보면 따뜻한 마음으로 삶과
세상을 바라보고 한 편으로는 날카로운 지성으로 진실을 꿰뚫으려 하는 고런? 드럽게 멋들어지고 난리네. 이런 스타일이 좋다. 그런데 이 작가가
그렇다고 )
다 죽게 된 임신소... 기어이 생명은 태어나고, 추운 날 이 시골할매는 욕을 욕을 해가면서 이 생명들을 살린다. 무심하게 던지는 쇠꼴에
왜케 코끝이 시큰해지냐며. 다 내려놓고 다 봬주는 글이다. 그 자연스러움에 진짜 삶이 있고 진짜 세상이 있어서 진짜배기 글이다.
중간꼭지에 제목과 같은 <놀러가자고요> 부분에서는 웃다가 울다가 진짜 미친 책 읽기를 했다.
놀러가자고 동네 이장부인인
할매가 이웃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내용인데... 책읽기하던 중간에는 웃을 일이 많았는데, 책을 덮고나면 자꾸 그 할매할배가 생각이 나서 편치
않아지기도 했다. 제발 다른 걱정들 좀 하지 말고 다리 성했을 때 놀러나다니지 좀... 에휴...
책 읽는 내내 즐거워서 웃었고, 시골에서 혼자 농사짓는 아버님 생각이 계속 났고,
내 꼭 자주 내려가보리라 그런 기특함도 솟았고,
삶이 무엇이야 무엇이어서 그리 치열해, 놀러나다니고 그러지 좀.. 그런 생각도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