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1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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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차별이라 할 만한 것을 겪은 적은 없다. 물론 국민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이 몇몇 친구만 더 좋아한다고 왜 차별대우하냐며 일기장으로 항의하기도 했었고, 가끔 엄마가 맛있는 걸 사놓고는 바로 안 주고 오빠가 오면 먹자고 할 때 왜 차별대우하냐며 엄마에게 앙탈부렸던 것 정도가 내가 겪은 차별이랄까.

그러던 내가 작년에 '차별'이란 것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작년에 우리 팀은 나까지 모두 5명이었고, 여자는 나 하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 나를 뺀 나머지 네 명은 골초. 그들은 틈만 나면 우르르 담배를 피러 나갔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그곳에서 많은 역사는 이루어졌다. 어느 순간 보면 자기들끼리 업무 분장이 되어 있다거나, 내가 전혀 듣도 보도 못했던 일을 자기들끼리 하고 있기도 했다. 한번은 팀장에게 어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워낙 다수이다보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얘기한 걸 팀 전체가 얘기한 걸로 착각하기도 했고, 자기들끼리는 배려해준다고 어떤 결정을 내린 것이 나에게는 일방적인 통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너희들과 함께 담배피러 나가지 않는다고 많은 부분에서 난 차별을 당했다라고 그들에게 얘기한다면, 아마 그들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냐며 항변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히 난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차별은 당한 사람이 분명한 목소리로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차별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차별금지법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종교적인 근거를 들이밀며 반대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법안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해지는 구체적인 차별이 어떤 것인지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좀 우스웠다.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결국 차별은 당한 사람들이 이것은 차별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가장 빠르고도 직접적인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차별인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자신들이 받은 차별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사실 내가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게 차별이거든. 내가 당당하게 나가서 내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사회가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들쟎아. 내가 내 테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런 테두리를 만들고 있다고...." 라고 얘기하는 이 에이즈 감염인의 말처럼 말이다. 차별 받은 사람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데, 무언의 힘이 의해 사회의 울타리 밖으로 계속 밀려나고만 있는데, 이들이 스스로 차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이 사회는 평등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성소수자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거주하거나 일하는 공간에서 누군가 커밍아웃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곳은 아마도 성소수자들에게 무척이나 차별적인 공간일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이 말에 근거하면, 이미 내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은 차별적인 공간이다. 우리가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공간, 또는 매우 개방적이고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공간 모두가 차별적인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행했던 나의 배려는 이미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만 한다. 무심결에 지나쳤던 공간들에서 전해오는 신호들을 감지하고, 그들에게 '수신확인'을 통해 힘을 실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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