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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못된 여자다 - 26명의 여자들이 섹스, 고독, 일, 모성, 결혼에 관한 진실을 말하다
캐시 하나워 엮음, 번역집단 유리 옮김 / 소소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놀라웠던 것은, 흔히들 우리 사회가 보수적이고 아직까지 여성을 옭아매는 낡은 구조가 튼튼히 버티고 있으며, 그에 반해 서구의 사회는 보다 더 개방적이고 많은 여성들이 우리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며 살고 있다고 여겨왔던 환상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굳이 상대적인 점수를 매겨서 줄세우기를 하겠다면야 우리보다 밑쪽에 있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우리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선진국, 그 중에서도 미국이란 나라의 여성의 위치가 그다지 크게 우리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이 여성이 안주해야 할 종착역이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예쁘게 여자답게 커 온 개인의 경험, 남들이 응당 결혼할 나이라고 생각할 즈음에 결혼하고 있지 않는 여성이 당해야 하는 온갖 질문공세와 무시 혹은 모욕들, 결혼해서 겪어야 하는 가사노동과 나의 일, 그리고 육아 문제에 있어서의 남편과의 갈등, 슈퍼우먼이기를 원하는 사회의 시선들... 그런 것들이 결코 우리 사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여성과 남성의 사회가 아닌 '인간'의 사회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앞으로 더 필요할 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에는 굉장히 많은 여성들의 삶이 나옵니다. 이혼 후 남자친구와의 동거에서 희망을 찾은 사람, 처음부터 결혼은 답이 아니라고 여기며 동거하는 사람, 결혼 후 같이 있는 것보다는 따로 있는 것이 서로의 사랑을 키우는 것이라며 애써 따로 떨어져서 사는 사람, 서로의 애인을 인정하며 자유롭게 사는 부부,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절대 다가가지 않는 부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평안한 일상의 부부, 유부남과의 연애 후 그 사람의 아이를 낳아 만족하며 살고 있는 여성,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를 하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실혼 관계의 부부, 아이를 두고 은근한 질투의 줄다리기를 하는 부부 등.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삶 속에서도 공통되는 고민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고, 어떤 방법으로 결론을 찾느냐는 것은 저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남자를 만나서 연애할 때까지는 불거지지 않았던 문제들, 즉 결혼 후의 가사 노동 문제, 육아문제, 새로운 애인의 등장, 자신의 일 등 이런 문제들이 함께 사는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됩니다.
- 내가 가사분담의 완전 평등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또 존과 내가 그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부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 할 먼 길이 남아 있고, 또 우리의 가사분담의 현실을 고려해 보면 그 길은 더욱 멀게 느껴진다.
무엇이 과연 해답일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겠지요. 결국엔 각자의 몫인 것이며, 이 책에 나온 말대로 행복은 균형잡기 일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 쪽에 서서 균형을 잡을 것인가 또한 저마다의 몫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세상에는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해 나갈 많은 여성 동지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성으로서 살아 나가야 하는 내 앞길에 큰 힘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겠지만, 그 선택에 떳떳하고 어떤 결과가 다가오든 좌절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 놓은 수 많은 장애물들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금 개인적인 화두로 돌아옵니다.결혼은 과연 해야 하는 것인가? - 결혼은 미친 짓인가?중요한 것은 나의 자아, 그 어떤 경우에도 나의 자아가 버려지거나 내 정체성이 상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의 부제에서처럼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여자가 되어가고 있습니까?바로 지금! 당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