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트라우마 -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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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봉암 평전을 읽다가 책의 주인공인 조봉암 이외에 궁금했던 몇몇의 인물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박헌영. 이 이름 석자 역시 수업시간에 얼핏 듣고 넘어간 기억과 함께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한 사람이란 것 말고는 딱히 아는 지식이 없었다. 조봉암 평전에는 그보다 조금 더 자세한 사항들이 나오긴 하지만, 아무래도 책의 포커스는 조봉암이다 보니 조봉암의 변절에 날선 비판을 하며 일제 말기부터 조봉암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고 나올 뿐 아니라, 조봉암 입장에서 다소 서운한 느낌도 가질 수 있도록 서술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룸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지만, 반대로 그렇다면 박헌영 입장에서는 조봉암을 어떻게 보았을 지에 대핸 궁금함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던 차에 우연치 않게 본 박헌영 트라우마. 이 책은 저자가 박헌영의 아들인 원경스님과 나눈 대화록이다. 원경스님의 기억속에 있는 내용들은 거의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해준다. 사람의 기억이야 윤색되기 나름인 데다가, 워낙 어릴 적의 기억들이고, 그 이후 고종사촌의 손에 의해 키워지며 다시 전해들은 이야기까지 더해져 기억의 신뢰도는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으나, 어쨌든 가장 가까이서 접했던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언자로서 그의 이야기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치고, 독립운동을 쉬지 않고 하기 위해 자신의 똥까지 먹어야 했던 사람, 목숨 바쳐 공산당을 세웠고, 자기가 세웠던 그 공산당에 의해 처형된 사람. 아무리 봐도 조봉암과 오버랩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국내의 독립운동, 거듭되는 투옥과 도피, 지하생활,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등 계속 궤를 같이 하던 두 사람이 일제시대 말기 각자의 선택에 의해 노선을 달리 한다. 하지만 그 이후는 다시 비슷한 운명을 걷는다. 하나는 남쪽에서, 하나는 북쪽에서 자신의 신념에 맞는 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을 한다. 농민과 농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나라가 발전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던 것도 똑같다. 사상의 자유, 집회의 자유, 신앙의 자유, 그리고 성 평등,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을 대우하는 것, 친일파의 척결, 민주주의의 원칙 수립 등 나라의 발전을 위해 얻어내고자 했던 것도 완벽하게 똑같다. 하지만 그들은 각각의 나라에서 사법적 살인을 당하고 만다. 조봉암은 이승만에 의해, 박헌영은 김일성에 의해.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대단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친일파들에 대한 청산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봉건제 시절의 지주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땅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고 있고, 민주주의의 원칙 따윈 이미 자본의 논리에 지배당한 지 오래인 나라. 그들이 살아서 지금의 현실을 마주 대하면 과연 어떤 말을 할까.


조선공산당의 최고 지도자였고, 북조선노동당의 설립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던 2인자 김일성의 치밀한 정치에 의해 조선노동당의 2인자로 내려 앉고, 다시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사형 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정치의 비정함, 김일성의 권력욕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지만, 박헌영이 조봉암을 변절자로 내몰고 그와 말한마디 섞지 않으며, 조봉암에 대한 왜곡된 보고를 소련에 했던 걸 생각하면 권력투쟁의 본질은 결국 나 아니면 안 되고, 상대를 누르지 않으면 결국엔 내가 무너지게 되는 약육강식의 정글논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박헌영이 남과 북 모두에서 실패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건 어찌 보면 역사의 법칙일 게다. 저자는, 이토록 훌륭한 인물이 남과 북 모두에 의해 배척받는 현실이 옳지 않다고 느꼈고, 남에서는 공사주의자이기 때문에, 반대로 북에서는 미제의 간첩이기 때문에 금기시 되는 이름이었던 박헌영을 이제는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독립을 위해 애썼던 과정을 고려할 때, 게다가 그와 함께 했던 주세죽, 김단야 등이 이미 독립유공자로서 복권이 되는 상황이니만큼 박헌영 또한 제대로 평가되어야 함은 맞다. 하지만, 그의 억울한 죽음을 애통해 하기에는 박헌영보다 조금 덜 뛰어나서 이름조차 알려지지 못한 채 묻혀야했던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빨치산들이 너무나 많다. 이 지점에서 원경스님의 지적은 지극히 옳다. "저는 박헌영 선생은 복권하더라도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동행자들에 대해 진실이 밝혀지고 또 그분들 한 분 한 분을 복권시켜 주는 것이, 그 자손들한테도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너무나 명확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조봉암과 박헌영이 여전히 독립유공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 내부에서마저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이란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좀 놀랍다.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지금은 뉴라이트에서 활동하는 김영환에 의해서 그런 인식이 퍼졌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서 저자의 주장에 백프로 동의한다. "1980년대 주체사상을 학생운동에 앞장서서 전파한 김영환이 박헌영을 미제의 간첩으로 규정한 게 섣부른 판단이듯이, 그가 비밀리에 평양으로 가 김일성을 만난 뒤 조직한 이른바 뉴라이트의 반북운동 또한 섣부르다. 박헌영을 간첩으로 몰아세울 만큼 김일성주의에 투철한 김영환과 김일성주의 타도를 외치며 반북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영환은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천박한 역사인식이라는 점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짚을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박헌영 트라우마인 것이 절묘하다. 트라우마는 정신적 외상을 의미한다. 어떤 충격을 겪었을 때 그 충격으로 인한 후유증이 지속적으로, 영구적으로 정신적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부당한 일을 행해놓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거나 덮기 위해 또다른 불의과 압박이 횡행하게 되고, 그것이 사회 전반에 걸쳐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의미에서 박헌영이라는 존재를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해준 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마지막 말은, 우리 사회가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인물 박헌영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비롯한 이 트라우마는 병명도 모른 채 1953년에서 2013년까지 옹근 60년 동안 남과 북에 만연했다. 이 책은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첫 걸음이다. 모든 트라우마의 치료가 그렇듯이 박헌영 트라우마의 치유책 또한 박헌영의 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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