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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 라틴여성문학소설선집
이사벨 아옌데 외 지음, 송병선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라틴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13인의 여성 작가를 골라(국적과 상관 없이), 그들의 단편들을 골라서 묶은 소설 선집이다. 라틴 문학은 가끔 마르케스, 보르헤스 등으로 대표되어 우리에게 알려지기도 했지만, 아직은 그리 대중적이지 못한 게 사실인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사벨 아옌데를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읽은 작품이 두개밖에 없지만, 둘 다 장편인 데다가 읽는 순간 다른 것들을 전혀 못할 정도로 집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감히 좋아한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집이나 운명의 딸 같은 작품은, 이사벨 아옌데의 개인사와 관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 혹은 한 집안의 이야기가 씨줄로, 그리고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날줄로 촘촘히 엮여 있어서 다 읽고 나면, 맟치 한 편의 역사책을 읽은 듯한 느낌을 주고, 역사 속에서의 한 개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 책에서도 이사벨 아옌데의 단편(‘복수’)을 만날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여성 작가들의 단편들을 볼 수 있는데 전체적인 공통점으로 고른다면 남미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넉넉지 못한 경제적 상황, 그 안에서의 여성의 삶을 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사벨 아옌데의 장편들이 주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단편에서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의 단편을 가지고 중남미 문학에 대해서 딱히 뭐라고 그 특징을 잡아낼 수도 없으려니와, 그 작가들의 경향조차 파악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소설선집의 의도가 무엇일 지는 몰라도 그저 잘 알려지지 않은 중남미 문학에 대한 소개 정도가 딱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을 펴낸 역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보면, 마치 우리 나라의 여성 작가들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듯 이야기 한다. 그것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문열의 ‘선택’ 에서 한 대목을 빌려와서 말이다.
『 앞에서 인용한 이문열의 ‘선택’의 문단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그를 ‘남성중심주의적’ 작가로 낙인찍히게 만든 대목이다. 그러나 그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페미니즘을 외치는 여성작가들이 그가 지적한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동어 반복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여성작가들에게는 별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p.225)』
무엇보다 정당한 평가가 되려면 동일한 잣대를 들이밀고 적절한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야 함에도, 현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고 있는 단편들만 골라서 책으로 만들고, 그것에 기준하여 우리 나라의 여성작가들의 한계를 운운하는 것은 조금은 섣부르지 않은가 싶다. 남성적 글쓰기, 여성적 글쓰기라 이름 붙이는 것 자체가 남녀의 지나친 구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역자의 말대로라면 남성적 글쓰기는 도대체 얼마나 훌륭하게 거대담론을 글쓰기에 잘 녹여 내었단 말인가?
하지만 역자의 의도와 관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이 책만을 바라본다면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역사 혹은 사회 속에서의 개인이라는 측면, 그 중에서도 여성의 역할이라는 측면에 대해서 아주 신선한 형식들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소설의 형식은 아주 다양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다양한 글쓰기 형식 속에 표현할 수 있는 주제 또한 무궁무진하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중남미 여성 작가들의 짧은 단편을 한번에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은 참 재미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