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 이다지도 허탈할 수가. 그래도 나 또한 대학까지 졸업한 멀쩡한 직업 여성으로서 나 자신과, 내 자신이 속한 여성이라는 계급(?)에 대하여 정체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살아간다고 자부하고 있었건만, 이 책을 읽는 동안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만 새삼 확인하였을 뿐…
이 책은 ‘그래 난 못된 여자다’ 와 형식이 아주 유사하다. 특정 경험담을 하나씩 들려주는 형식. 하지만 ‘그래 난 못된 여자다’ 에서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여성들의 생활 혹은 스스로의 가치관이라는 부분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면, ‘아주 작은 차이’ 에서는 보다 성(性)적인 면에 focus를 두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그것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아 제대로 된 여성의 자아 찾기를 만들어가자는 성격이 좀 더 강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여기에 나오는 대다수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 요즘 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들이 독일의 25년 전 모습이라는 것이다. 25년! 독일은 그렇다면 그 25년 동안 얼마나 나아졌을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아무리 발달한 유럽 서구 문명이라 해도 여성의 운명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너무나 비관적인 견해일까? 어쨌든, 이 책을 읽다보면 독일의 25년 전 모습과 우리의 현재 모습이 너무나도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자의 말대로 그 25년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기 위해 이 책이 나온 것이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 갈 길이 먼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가사 노동에 대한 인식, 동성애를 바라보는 관점, 성의 평등, 가정 주부의 지위, 현재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여성운동의 진정한 의미, 프로이트적 정신분석학의 치명적 오류들, 그로 인해 수십년 간 고통받으며 살아온 여성들의 삶…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나와 있다. 중요한 것은 “아주 작은 차이”를 인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 또한 진정한 평등이란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없는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차이”란 무엇인 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차이”라고 여겼던 것조차 나도 모르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주입된 개념이 아니었을까,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편견을 지닌 채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상상 외로 여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무지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느꼈지만, 그것 또한 인정해야 할 현실인 것 같다. 그 와중에 내게 가장 크게 와 닿은 것은 “여성들의 네트워크” 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아픔을 감싸안아주는 활동이 여성 스스로가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는 데 얼마나 힘이 되는 지이다. 결국, 여성의 문제는 여성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 스스로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것, 그 네트워크들이 다시 더 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렇게 형성된 거대 네트워크 자체가 여성들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제는 주변의 여성들을 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