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 미암일기 1567-1577
정창권 지음 / 사계절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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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중기인 16세기에 살았던 미암 유희춘의 개인적 일기를 바탕으로 그 당시 양반들의 생활상을 비교적 상세하게 풀어 쓴 책입니다. 저자가 국문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소설의 형식을 빌려오기도 하였고, 많은 양의 각주를 통해 직접 원문을 해석과 함께 실어 놓기도 하여서 읽는 데 지겨움이 전혀 없지요.

왜 16세기의 미암일기인가에 대해서 저자가 초반에 설명을 해 놓았듯이, 우리가 보통 조선이라는 왕조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생활상과 실제 16세기의 그것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 이 책이 나오게 된 기본 바탕입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은 17세기 이후의 조선 후기를 의미하는데, 이 때가 누구나 다 알고 있듯 철저한 남존여비의 가부장적 사회인 것이며, 16세기만 해도 '태조 왕건'에서 말타고 전쟁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와 같은 고려의 기운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따라서 여성의 지위도 거의 남성과 대등하였으며(물론 벼슬은 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의견을 비교적 소신 있게 피력하였고, 결혼 후 처가에서 사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미암 유희춘은 주로 홍문관 쪽의 벼슬을 맡아 하던 학자였는데, '여인천하'에도 잠시 나왔듯이 문정왕후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에 '양재역벽서사건'으로 귀양을 갔다가 선조가 즉위한 후 복권되어 그 후로 계속 벼슬을 맡아 하며, 왕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일도 맡아서 하곤 했던 사람입니다. 저술 활동이 활발하였는데, 그 어떤 저술보다 오히려 이 일기가 후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보았습니다.

미암의 부인은 '송덕봉'으로, 선비의 풍모를 갖춘 여인이었습니다. 미암과 곧잘 시로서 화답하며 의견을 나누기도 하는데, 오히려 시 짓는 실력은 남편보다 뛰어나기까지 하였다고 하는군요. 그녀는 시로서 남편에게 건강을 생각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오라고 충고하기도 하며, 남편에 대한 애틋한 정을 적어 보내기도 하고, 힘들어 하는 아들을 위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에도 소홀함이 없어서 집안의 대소사를 비롯한 모든 일들은 덕봉의 책임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집을 짓는 일조차도 덕봉의 손끝을 통해 모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집안의 실질적 권력자라고 보아도 지나침이 없을 듯 하더군요.

이 시기에는, 부인의 집에서 사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오히려 사정이 있을 때마다, 혹은 일이 생겼을 때마다 시댁을 근친을 다녀오는 것이 당연스레 받아들여 졌었다고 합니다. 미암 역시 남원의 처가에서 살았으며, 미암의 딸은 평생 미암과 함께 살았고, 미암의 아들과 손자 역시 결혼 후 처가에서 살면서 일이 있을 때마다 미암에게 달려오곤 하였습니다. 또한 재산 상속에도 남녀가 다르지 않았으며, 부모님의 제사는 모든 자식들이 돌아가며 지냈습니다. 따라서 덕봉도 친정 부모님의 제사를 빠지지 않고 지냈던 것이죠. 언제 다시 이런 시절이 올런지 부럽기 그지 없네요. ^^

이렇게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 보장 되다 보니, 남편이 첩을 얻었을 경우 부인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물론 부인이 투기를 한다 하여 오히려 죄인 취급을 당했지만, 이 때는 상황이 좀 다르더군요. 예를 들어 미암의 사위가 첩을 얻자 미암의 딸은 남편을 방에 들이지도 않아 불도 안 때는 사랑방에서 살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끝내 남편이 중풍에 걸리고 말지요. 그리고 미암과는 상관 없지만, 이 당시 기록을 보면 남편이 첩을 얻었다 하여 집에 들이지조차 않아 남편이 밖에서 기다리다가 지쳐 쓰러져 죽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자기 남편이 죽었다고 떠벌리고 다니기도 하며, 평생 같이 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양반집에서 말이죠. 참 신선하지 않나요?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조선에 대한 선입견을 없앴으면 하는 마음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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