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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손 ㅣ 꿈꾸는 그림책 4
마거릿 H. 메이슨 글, 서애경 옮김, 플로이드 쿠퍼 그림 / 평화를품은책(꿈교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노예제도가 있었던 <노예 12년>의 배경인 1840년대는 꽤 멀리 떨어진 과거이다. 오늘날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을 ‘노예’로 삼고 그걸 법적인 ‘제도’가 뒷받침해주는 나라가 있을까? 물론 노동자를 노예처럼 대우하려고 하는 곳들은 사회 곳곳에 남아 있지만 한 인간을 물건처럼 소유해서는 안 되고 사고 팔 수 없다는(본질적으로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화관에 앉아 이 영화를 보면서 경악한다. 살갗이 벗겨지고 등이 패일 정도로 채찍을 휘두르는 등 노예에게 가해지는 참혹한 폭력, 그리고 쉬지 않고 일을 시키기 위해 곳곳에 관리인을 배치하여 그들을 감시하는 운영 체계, 무엇보다도 ‘노예’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처럼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영화 <노예 12년>이 노예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흑인들을 착취했던 시대를 관객들에게 환기시킨다면, <할아버지 손>은 1964년 미국에서 ‘인종차별철폐법’이 만들어졌을 무렵을 겪어낸 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그림책이다. <할아버지 손> 역시 실화이다. <노예 12년>은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고, <할아버지 손>은 디트로이트의 빵 공장에서 흰 빵 반죽을 만질 수 없었던 조 바넷이라는 흑인의 이야기를 친구인 마거릿 H. 메이슨이 쓰고 플로이드 쿠퍼가 그린 그림책이다.
<할아버지 손>은 흑인의 인권 이야기를 '손'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조지프의 할아버지는 크고 검은 손으로 피아노도 잘 치고 야구공도 멀리 날리고, 손자의 운동화 끈도 매어 주지만, 젊은 시절 일하던 빵 공장에서 흰 빵의 반죽은 만질 수 없었다고 한다. 공장 관리자들이 흰 빵을 검은 손으로 만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흑인들은 검은 손 차별을 막는 법을 만들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고 결국 자기들의 권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를 살아갈 손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제는 맛있는 흰 빵을 구울 수 있다고.'
<노예 12년>의 무대인 1800년대에는 자유를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고, <할아버지 손>의 배경인 1900년대에는 흑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는 운동이 있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흑인들이 본질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당연한) 인식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온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그리고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손자, 손녀이고 그 후세대인 우리들이 100년 전의 그 아픔을, 그들의 희생과 노력을 잊지 않고 그 마음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