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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ㅣ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그는 어떻게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을까.
그리고, 말리고, 덧칠하고.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십 대 후반, 뒤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빈센트는 실력은 빨리 늘지 않고 돈은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생 테오에게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짐을 지우고 있었다.
편지의 많은 내용은 그가 가진 신앙과 세상을 보며 갖게 된 철학적인 고민을 담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내용은 돈이 떨어졌으니 조금 더 보내 달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는 테오를 향한 미안한 마음을 자신이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야 하는 이유와 설득으로 표현한다.
나는 그림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고흐의 그림을 볼 때는 마음이 딱 맞는 친구를 만나는 순간처럼 영혼이 통하는 느낌이다. 교과서로만 접하던 그를 진심으로 알고싶게 된 것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본 뒤였다. 어디선가 꽤 원작의 색감을 잘 살린 사진을 보고는, 그가 밤하늘을 보는 방식과 별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고흐의 별밤' 전에서 그 그림을 실물로 만나게 됐다.
실제로 보게 된 그 순간의 감동은 말로 전하기가 어렵다. 전시회의 마지막 날, 마지막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바닥에 앉아 그림을 올려다보는데 눈물이 났다. 죽음을 맞이하기 일 년 전, 그는 음식을 살 돈은 아껴도 물감은 최고급으로 사용하여 그의 그림은 시간이 흘러도 그가 마주친 밤하늘의 빛깔을 보여준다고 했다.
편지 속에서 그는 자신의 그림이 호평을 얻자 그것에도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 그럴리가 없다-며.
그림을 시작한 지 4년 째 되던 해의 농촌 인물화와 1888년 즈음 아를의 풍경화들, 그리고 말년의 나무 그림들은 어렵지 않고 겸손했기에 더 화려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읽을 것이라는 경계심 없이 써낸 '편지'이기에 이 글들은 더욱 솔직하고 그렇기에 소중하다.
그림 뿐 아니라 글도 잘 썼던 그는 자신의 학문적 배경과 불행했던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 시선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담담하게 적어냈다.
게다가 동생 테오의 편지에서도 넘치는 사랑이 느껴진다. 형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동생.
테오는 사랑과 헌신이 가득한 사람이다.
진실된 마음으로 가난 속에서도 최고의 재료로 최선의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리고 그를 꿈꾸게 했던 밤하늘의 별.
삶과 죽음, 세상의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했던 그는 치열하게 그림을 그려냈고, 그 그림은 지금도 남아 죽은 뒤에도 멀리 빛을 뿜어내는 별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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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16p.)
테오야 그런 건 생각도 하지 말자.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고, 그게 전부 아니겠니.(35p.)
위험의 한가운데에 안전한 곳이 있는 법이지.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44p.)
그런 후회를 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충실한 훈련은 게을리 한 채 승리자가 되려고 허겁지겁 달려왔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오직 그 하루만 사는 사람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지루하게 생각하는 해부학, 원근과 비례 등에 대한 공부를 즐겁게 할 정도로 그림에 신념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계속 노력할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기 세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50-51p.)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뿐이라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84p.)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115p.)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134p.)
분명 "웬 쓰레기같은 그림이냐"는 말을 들을 게 뻔하지만. 내가 각오하고 있듯 너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122p.)
포르티에 씨는 자신이 소유한 세잔의 그림을 따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캔버스 옆에 놓고 보면 다른 그림의 색채를 죽여버린다고 말했지. 세잔의 그림은 황금색 배경에서 훌륭해 보이는데, 그것은 그림의 색조가 뛰어나고 모든 단계의 색이 아주 짙게 칠해졌기 때문이다. (179p.)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 이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렵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 짧고, 특히 모든 것에 용감히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206p.)
형의 사랑과 작품들로 이미 몇 배나 나에게 되돌려주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야. 그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돈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 아니겠어. (241p.)
형이 알아야 할 건 어떤 관점에서도 형 자신을 불쌍히 여길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야.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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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제 곧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 때가 다시 올 텐데 말이야.
하지만 우리 희망을 갖기로 해. 형의 불행은 분명 끝날 거야. (246-24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