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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데이비드 핼버스탬 지음, 이은진.정윤미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000 페이지가 넘는 압도적인 분량(?) 때문에 며칠 동안 정독하느라 애엄마한테 '당신, 하루 종일 뭐하는거냐? 논문 쓰는 거야? 제발 애들하고도 좀 놀아줘요~'라는 잔소리까지 들었네요.
와~우~,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의 삶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가치관 형성에 막대한 요소가 되는 '한국전쟁'의 실제 모습에 대해 충격적인 정도로 알게된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대로 단순히 미국은 '애치슨 선언으로 한국을 방어선에서 제외시켜 공산진영을 자극'하고, 북한은 '친일파와 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나섰으며, 소련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김일성을 사주'하고, 중국은 '소련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참전한 것'이 결코 아니네요.
특히 많은 이들이 위대한 장군으로 알고 있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실제로는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독단과 독선, 자기과시로 '수많은 미군 장병들의 목숨을 잃게 만든 주범'이었고, 한국전쟁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인천상륙작전이 실제로는 '관련 정보가 줄줄이 새어나가 소련과 중국이 미리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고, 북한에게도 여러 번에 걸쳐 대비할 것을 충고하였으나 지도자인 김일성의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성공한 작전'이었다는 것도 놀랍기만 합니다. (김일성과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가진 분들의 잘못된 생각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될 것같네요.)
더글러스 맥아더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고 그를 영웅처럼 받들었던 에드워드 알몬드 중장의 탁상행정식 작전지시로 수천~수만 명의 미군, 유엔군의 목숨이 개죽음이 되었슴에도 단지 '지휘관의 업무였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는 장면들은 분노까지 불러 일으키네요.
'중공군이 이미 북한 땅으로 넘어왔다'는 여러 차례의 정보보고에도 불구하고 '그럴 리가 없다. 약간 있기는 하겠지만 미군이 다가오는 걸 알면 금방 겁을 먹고 도망갈 것이다'라는 상식이하의 판단을 하고, 한국과 한국인을 너무나도 경멸하여 아예 한국 땅에 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였고 도쿄의 높은 건물에 위치한 사령부에서 오로지 자신의 전과만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되었으며, 승리를 거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성과이고 패배는 무조건 현장 지휘관들과 사병들의 잘못이라고 우겼던 맥아더와 그의 추종자의 모습은 수년 전 우리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황우석 교수 사건을 떠올립니다.
아마 우리 사회의 꼴통들은 이 책에 대해 '좌파가 쓴 대표작으로 전부 말도 안 되는 허위이다'라고 주장하겠지만 오랫동안 <뉴욕타임즈> 기자로 생활하면서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저널리스트의 글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시각이 얼마나 좁고 터무니없었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객관적인 사실과 남겨진 자료들을 통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데, 우리만 그 놈의 근거없는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완전히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었네요.
책을 읽는 내내 영하 수십도의 기온과 말도 안 되는 작전지시, 그리고 보통 열배가 넘는 수적 열세 속에서도 주어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 애쓰다 사망하거나 부상한 수천, 수만의 군인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던 그들의 영혼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어느 조직이든 지도자들은 제 역할에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