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창비시선 271
박연준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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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잠과 불면의 시간이 계속되면, 생각도 덩달아 많아진다. 둥실둥실 생각을 떠올리다가 이외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그대여.
한 평생을 지독한 가난과 핍박 속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다가
천수를 다하고 하늘로 돌아간 시인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겠다던 시인처럼
그대도
천수를 다할 때까지
천지만물을 눈물겹게 사랑하고
그대 자신을 눈물겹게 사랑하라.
이 세상에 아직도
외롭고 가난한 시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분명 그대도 살아 있을 가치와 희망이 있다.
용기를 가져라.
분연히 일어서라.
그대는 젊다.

날다타조 중에서-

난 시집을 잘 사지도 않지만, 관심도 별로 없다. 한데 어느 날, 어떤 시를 보고 한 눈에 반해서 시집을 구매했던 적이 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

얼음을 주세요.

이제 나는 남자와 자고 나서 홀로 걷는 새벽길
어린 풀잎들, 기울어지는 고개를 마주하고도 울지 않아요
공원 바닥에 커피우유, 그 모래빛 눈물을 흩뿌리며
이게 나였으면, 이게 나였으면!
하고 장난질도 안 쳐요
더 이상 날아가는 초승달 잡으려고 손을 내뻗지도
걸어가는 꿈을 쫓아 신발끈을 묶지도
오렌지주스가 시큼하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나는 무럭무럭 늙느라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갈지도
늙은 봄을 위해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보일지도
몰라요, 모르겠어요.

추억은 칼과 같아 반짝, 하며 나를 찌르겠죠
그러면 나는 흐르는 내 생리혈을 손에 묻혀
속살 구석구석에 붉은 도장을 찍으며 혼자 놀래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새벽길들이 내 몸에 흘러와 머물지
모르죠, 해바라기들이 모가지를 꺽는 가을도
궁금해하며 몇 번은 내 안부를 묻겠죠
그러나 이제 나는 멍든 새벽길, 휘어진 계단에서
늙은 신문배달원과 마주쳐도
울지않아요

***

시집을 읽다보면 그녀의 생활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요. 그럼, 어쩐지 위안이 되는 거예요.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발랄하게 노래하는 걸 듣고 있자면 나도 덩달아 발랄해지는 거예요.

스물다섯 때, 시가 몸살나게 좋았다. 그랬으니 신생아처럼 하루 스무 시간 잠으로 보내는, 아버지 발아래 엎드려 자꾸만 연필을 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든 발목, 혈관 깊숙이 빨대를 꽂아, 공들여 시를 뽑아 먹었다. 시를 뽑아먹을수록 나는 통통해지고 아버지는 아무렇게나 툭툭, 부러졌다. 그게 마음이 아프다. -시인의 말 중에서

눈에서 눈물을 톡톡 뽑아, 그 눈물로 풍선을 만들어 통통 튀겨 가지고 노는 모습이 떠올라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우는 캔디말이예요. 나는 그 노래를 이렇게 불렀었어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또 울어. 울고, 울고, 또 울지, 참긴 왜 참어.
그런데!
핏빛의 시들을 읽고 난 후에 나는 울지 않아요. 나는, 조금은, 발랄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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