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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바늘>을 읽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늘 그런 식이지만. 천운영은 처음 읽는데 작품분위기가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다. 제목부터 섬뜩. 얼마 전 읽은 배수아의 작품도 그랬는데 또 이런다. 다만 그녀의 것보다는 좀더 현장감이 더 살아있다. 몇 작품을 읽다가 이 여자 전직이 뭘까? 궁금해졌을 정도였으니까.
앞부분의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그 의문은 풀렸다. 그 글에는 사전에 많은 취재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글이 실려 있다. 엉덩이와 발로 글을 쓴다는 말을 증명해주는 글귀다. 더 앞장으로 가 보니 대학 졸업 후 또 다시 대학을 간 이력이 적혀있다. 문예창작과에 가기위해 예대에 다시 입학한 흔적들. 글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나를 뜨겁게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대게 한번쯤은 어쩌면 내게도 언젠가 이런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이런 적이 있어, 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만든다. 내가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과 앞으로도 하지 않을 일. 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누가 봐도 그녀가 썼겠다 싶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와 그녀만의 색깔을 담고 있다. 표제작이자 등단작품인 바늘보다 오히려 좋았던 작품은 눈보라콘. 이 작품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단편소설 눈보라콘, 이 한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대만족이다.
다음은 내가 재밌게 읽었던 단편들.
「눈보라콘」 ★★★★★
부라보콘을 대신해 눈보라콘을 사먹는 소년이 있다. 부라보콘은 소년과 같은 해 태어난 운명체인 동시에 엄마의 대용품이기도 하다. 소년과 그의 친구는 짝퉁 나이키와 짝퉁 부라보콘을 사기위해 귀여운 사기행각과 도둑질을 일삼는다. 이야기는 늘 소년 앞에서 부라보콘을 먹던 점집소녀와의 추억으로 끝을 맺는다. 묘한 여운을 남겼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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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가짜 휘발유에 젤 많이 들어간 게 뭔지 아나?”
소녀가 느닷없이 물어왔다. 나는 머쓱해져 부라보콘을 한입 베어 물고 대답한다.
“물 아이가?”
후후훗, 짧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쳐지나간다.
“그라믄 어떻게 차가 가겠노? 그랬다가는 당장 들통나뿌는데. 그 속에 젤로 많이 들어 있는 거는 진짜 휘발유다. 무슨 얘긴 줄 알겠나?”
머리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짜에도 진짜가 들어있다는 말인가? 진짜로 가짜는 만든다는 얘긴가? 내가 벗겨낸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들여다보았다. 부라보콘이 아니라 눈보라콘이다. 여태까지 소녀가 먹고 있던 것이 부라보콘이라는 생각은 잘못이었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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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바다」★★★★
그와 그녀는 곰장어집을 운영한다. 글은 아내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곰장어 같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로 딱히 큰 줄거리가 있는 건 아닌데도 읽고 나서 코끝이 시큰해졌던 단편.
「행복한 고물상」 ★★★
뱃속의 아이가 죽은 뒤 아내는 남편을 패기 시작한다. 아내는 점점 동물화가 되어가고, 남편은 점점 고물화가 되어간다. 인공수정을 통해 아기를 다시 갖기 시작하기로 한때부터 아내는 다시 평온한 일상을 되찾지만 그는 행복하지만 뭔가 허전한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는 남편이 죽은 독골할멈에 대한 생각으로 끝을 맺는다. 늘 남편이 죽기를 바라던 독골할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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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에 단련된 사람은 제 앞에 닥친 희망을 낯설어하게 된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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