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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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그녀는 ‘한 독자가 외로울 때는 내 소설을 안 읽는다고, 그럴 때 내 소설을 읽고 있으면 더 외로워진’다고 편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나는 그 반대다. 슬플 때 유쾌한 책을 읽어버리면 더 슬퍼진다. 그건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과 비슷한 감정인데, 상대적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 감정은 나는 이렇게도 슬프고 외로운데 저이는 사는 게 너무도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구나, 하는 데서 연유한다.

 

미란에게 온 스트레스성 실명이나 하진에게 온 부분기억상실처럼 요즘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라디오를 켰을 텐데. 라디오는 끄는 순간의 적막이 싫어서 요즘에는 잘 켜지 않는다. 이참에 잘 됐다 싶어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막 적는다.


“알고 나면 더 쓸쓸한 일도 있어.”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알게 돼서 쓸쓸한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를 일이다. 늘 안락의자라고 여기며 앉아 있던 의자가 알고 나니 가시로 만들어진 의자일 수도 있겠지. 내가 떠나면 견디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서 망설이며 떠나지 못하고 있던 사람 또한 그 자신이 떠나면 내가 견디지 못하리라 여겨 망설이며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 58페이지.


“슬퍼하지 마……. 물속에 하늘이 비치듯이 그저 네 마음에 뭔가 비칠 따름이야. 네 마음이 물과 같이 투명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은 하지 마. 널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어른이 되면 그래서 네 마음에 다른 것이 비치게 되면 그 땐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지지 않아도 그때는 그 힘으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진 너와 나만이 아는 비밀이야.” - 103페이지.


“그날 그 사람이 그랬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그때가 내가 외로운 때였지요, 라고. 나도 그래. 내가 뭔가를 물끄러미 응시하거나 손가락으로 한가지 동작을 계속하고 있을 때 그런 때가 내 마음이 외로운 때야.”

“그러면 좀 나아?”

“아니…… 그냥 외로우니까 그러구 있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까 말로도 안 되고 손으로도 안 되고 도리 없이 주저앉아 있거나 바라볼 수밖에 없으니까.”- 109페이지.

사실 이 책은 오래전 내 손에 들어 왔던 책들 중 하나인데 안 읽고 있었다. 그냥 책꽂이에 꽂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책들 중 하나. 신경숙을 알고부터는 그녀의 책을 하나씩 하나씩 사들였다. 다 갖고 싶어서. 누구도 신경숙처럼 내 마음을 잘 아는 작가는 없었거든. (아직까지는!)


밤에 너무도 잠이 안와서 읽기 시작했다가 읽다가 책을 베고 잠깐 누워 있다가 또 책을 뒤적거려 포스트잇을 껴놓은 그 부분부터 다시 읽기 시작해서 결국엔 다 읽었다. 읽고 나서 말했다.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 왔나요, 당신? 차마 소리 내서 말하진 못하고, 속으로 그랬다.


여기 등장하는 이들. (김하진 또는 오선주. 미란이. 하빈 또는 언니. 윤. 현피디. 아버지. 그리고 한 밤중에 불쑥 전화를 거는 익명의 여자 또는 이경.) 모두가 상처를 안고 있고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아픔이 되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읽는 동안 나는 하진이도 되었다가 미란이도 되었다가 익명의 여자도 되었다가 했다. 하진이가 돼서 윤에게 가서 잣죽을 얻어먹고, 미란이가 돼서 하진이등에 달랑 업혀도 보고, 이경이 돼서 나를 모르는 하진에게 전화도 걸고, 다시 하진이 돼서 이경이의 전화를 기다리고 그랬다.

 

 

그러자 텅 빈 내 방이 가득 차올랐다. 하진을 덜 슬프게 만들어 줬던 언니의 피아노 소리와 달콤한 복숭아 냄새로. 한밤에 방에는 오직 나뿐인데, 그 아무도 없는 공간이 따뜻해지는 느낌. 아마도 이 책은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정하고 쓴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일 거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났나? 글쎄. 결론은 이거 아닐까.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살아진다, 이렇게. -201페이지.   

……제가 주제넘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어요. 더디게지만 천천히지만 좋은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을 내세요. -256,7페이지.

 


p.s.1. 누군가 그녀의 글을 읽고 더 외로워 졌다면 그녀는 진심으로 외로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거야, 분명히. 깊고 깊은 슬픔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글을 읽고 안심하게 되거든. 아, 다행이다, 하고. 나처럼 외로운 사람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고.


p.s.2.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비가 온다. 오늘은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 수 있으려나? 천둥이라도 버럭 쳐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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