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잠을 깨라.

먼동이 트자 태양은 밤의 들판에서 별들을 패주시키고

하늘에서 밤마저 몰아 낸후 

대왕의 영토에 햇빛을 내리쮠다.


아침의 허망한 빛이 사라지기 전 

주막에서 들려 오는 저 목소리


"부흥의 준비가 끝났거늘 어찌하여 가만히 멀뚱거리고 있는건가?"


꼬끼오, 닭이 울자 주막 앞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


"문을 열어라, 우리들이 머물 시간은 짧디짧고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는길!"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4행시 도용과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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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경 사비궁

지난 100여년간 북적거리던 저잣거리에는 공포에 떠는 울음소리와 절망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절망소리의 주인들은 모두 백성과 천민들의 소리, 혹은 황산벌에서 모두 장열히 전사한 5000결사대의 한많은 원통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귀족들이 공포에 떠는소리 혹은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떠났다, 고구려,왜(일본) 혹은 자신들의 권세를 계속 누리기 위해 신라나 당나라로 투항했을것이다.  그러나 투항하면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갈 백성들에게는 고구려나 왜로갈 돈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두가지 방법 밖에 없었다. 


'끝까지 싸우려 하는 싸울아비들과 함께 하거나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다가 나.당연합군에게 죽임을 맡는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피할수 없는 선택의 기로였다.


사비궁. 천정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7월의 그날은 장마철이어서 비가 많이내리고 매우 더웠다.

원래는 비가 내려도 대신들과 궁녀들이 왔다갔다할 궁궐에는 버려진 무기들, 쓰러진 깃발, 매일 아침마다 백제의 기상을 만천하에 알리기위해 쳤던 북. 그러나 몇몇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장군들 그리고 싸울아비들은 모두 천정전안에 집결해 있었다. 보통 어전 회의에서는 옥좌 뒤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궁녀와 내시 그리고 수많은 대신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궁녀도 내시도 수많은 대신들도 없었다. 

싸울아비의 수장 '사택증사'와 태자 '부영융'과 왕자들 그리고 사비성에 남은 5명의 귀족이 전부였다.

모두들 초조하게 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어려운 시국속에 과연 어떻게 해야 이 700년 사직을 보존할수 있을것인가?  과연 대왕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전 회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대왕 폐하 납시오."


그리고 의자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었고 예전처럼 옥좌에 앉고 근엄한 표정으로 대신들을 보았다. 어전회의에 있던 대신들은 의자에게 절을하였다.  그리고 의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짐은, 황산벌에서 장렬히 죽어간 달솔 계백과 5000의 용맹한 백제군사들에게 오직 미안한 마음뿐이오.

다만 그들 덕분에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의병과 성주들에게 시간을 벌어줄수 있었소.  우리에게도 최소한의 승산이 생긴것이라고 짐은 사려되오,그러나 얼마뒤면 나.당 연합군이 합류할것이고 우리는 사비성에서 그들을 막아낼 군사가 터무니 없이 부족하오. 그들을 막아낼 군대와 합류할려면 적어도 한달은 걸릴것이오. 허니, 짐은 그들을 옛 수도인 '웅진'에서 막을 생각이오. 웅진은 과거 아리수유역(한강)을 고구려에게 빼았긴후 고구려에게서 백제를 지킬수 있던 철옹성이었소. 허니 우리는 그곳에서 적군을 막아내다가

성주의 군대와 의병들과 합류한다음  고구려와 왜의 지원을 받아 나.당연합군을 무찌를것이오.

경들은 짐의 뜻에 따라주시기 바라오."  

의자가 말을 끝냈다. 과거 백제조정은 의자가 말을 끝내자마자 반박하고 거부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백제조정은 아무말없이 의자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사비궁은 불태워버리시오. 적군의 손에 약탈되고 불타는것보다. 그게 더 났다고 생각되오."

"대왕 폐하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

사비궁에서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끝나고 찰갑을 입고 말에탄 의자는 사비성의 성문을 나와 웅진으로 향했다. 그를 따르는 100여명의 싸울아비와 태자 부여융  몇몇 대신들은 비를 맞으며 웅진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불타느 사비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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