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산이 울렸다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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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은 '마이단 사브즈'라는 마을에 살고 있던 아유브라는 농부의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농부는 막내를 특히 사랑했는데, 어느날 막내를 악마가 잡아가 버렸다.

농부는 막내를 잃은 슬픔에 못 이기다가, 결국 악마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악마가 있는 곳에서 보게 된 자신의 막내 아들은 정말 천국과도 같은 곳에서 뛰놀고 있었다.

악마는 농부에게 선택권을 준다. 아들을 이곳에서 잘 살게 할 것인지, 가난한 농부의 집으로 다시 데려갈 것인지를 말이다.

농부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결국 아이를 그곳에 남겨두는 것을 선택했고, 대신 악마가 준 기억을 없애는 약을 마시게 되어 그곳에서의 기억과

막내 아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 아버지가 압둘라라는 아들과 파리라는 딸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그의 딸과 아들 사이에서 현실이 되었다.

파리가 입양된 것이다. 딸을 다른 부인에게 보낸 슬픔을 상상할 수가 없지만, 언제까지나 여동생의 곁에 있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오빠 압둘라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했을지도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파리는 어느 정도 가족을 잊고 살 수 있었지만, 결국은 가족을 찾으려는 노력 끝에 나중에는 그렇게 찾고 싶던 오빠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치 어릴 때 아버지가 들려줬던 아유브라는 농부의 이야기처럼, 오빠는 이미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이야기 속 농부가 그랬던 것처럼 여동생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그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여동생의 이름이었는데, 여동생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그의 딸 이름을 여동생의 이름과 같은 파리로 짓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파리가 오빠를 찾아가서, 왜 딸의 이름을 파리로 지었는지 기억이 나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고개를 젓는 오빠의 모습 앞에서 눈물 짓는 파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는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한 파리의 마음은 그녀의 대사에도 드러난다.

"네 뿌리를 아는 건 중요한 거야. 네가 한 인간으로서 어디에서 시작했는지를 아는 건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비현실적인 것 같거든. 수수께끼처럼 말이지. 이야기의 시작을 놓치고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격이지."

교수 자격으로 파티에 참석했을 때에도, 누군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물었을 때 파리는 사실 저는 이름만 아프간인입니다라고 한다.

태어나기만 그곳에서 태어나고 다른 곳에서 자랐으며, 다른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재외동포라는 단어가 때로 슬프게도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분명 뿌리를 아는데, 모국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하지만 그 사실이 그들에게 때로는 더욱 그들의 모국어를 함께 써서라도 그들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파리는 그래서 그녀가 결혼한 후에 낳은 딸이 아프다고 했을 때, 나한텐 이런걸 견뎌낼 용기가 없다고 외쳤는지도 모른다.

팔려가서 입양되어 길러졌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이미 떨어져보았기 때문에, 모국에서 떠나보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녀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그녀의 삶을 이렇게 비현실적이도록, 안타깝도록 만든 것은 나비삼촌이었을까? 그녀를 보내는 것을 말리지 않은 아버지였을까? 아프가니스탄을 황폐화시키고 사람들을 문명화된 세계를 동경하게 만든 전쟁 탓이었을까?

단지 딸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아버지가 해줬던 이야기처럼 딸의 행복을 위해 애써 괜찮은 척 하며 딸을 보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주로 다루어지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에, 저자는 전쟁이 그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이들의 이야기들 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그곳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전쟁을 겪었음에도 아프가니스탄 안에서도

변화가 되는 도시들은 변화가 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삭막함을 느끼기도 하고, 오히려 시골의 생활을 그려보기도 한다.

이런 변화의 중심을 이끌어가던 한 아프간 아버지의 아들인 아델의 이야기도 있다. 아델은 사령관으로 일컬어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했다.

하지만 골람이라는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의 마을이 자신의 아버지의 손에 의해 도시화되고 자신의 집으로 탈바꿈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델은 더 이상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었다.

뉴스 기사도, 마을 사람들도, 어머니도 사실은 아버지의 비위를 맞춰주고 아버지에 대한 추악한 진실을 숨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이 세상의 요소들은 때로 진실을 호도한다. 그래서 진실을 호도하는 무리에 가담하는 사람들과, 호도된 거짓 진실에 속는 사람들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이 서로 어긋나서 , 서로의 가치관이 뒤얽혀 전쟁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같은데,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눈과 귀를 막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미국이 반테러단체를 지지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양상이 이야기에 나오는데, 우리나라도 전혀 다른 상황은 아니다.

북한은 한쪽에서 우리를 협박하고, 미국은 우리나라를 감싸준다는 명분하에 주둔해있다. 물론 휴전 중인 우리는 툭하면 전쟁이 발발하는

아프가니스탄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진 않지만, 무슨 소용인가?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다른 나라의 군인들도 이곳에 와서

초토화가 되는건 이 땅일텐데 말이다. 사람들과 국가는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 어느 나라이든, 어떤 사람들이든 마찬가지이고,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도 다르지 않다. 물론 그 안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 외에도 각자의 사정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 평화로운 마을 속에 살아가지만 변화를 겪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개개인적 이야기들에 얽힌 목소리가 슬픔과 공감과 아름다움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의 사람들은 수많은 불편한 뉴스를 접하기만 하면 모국을 외면하고 싶어하고, 떠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더더욱 이 이야기와 이 땅을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역사를 들려주고 싶다.

우리의 뿌리는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 변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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