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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똘스또이
이강은 옮김
창비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이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벗어나고 가족들도 다 벗어나게 해주어야 했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훌륭한 일인가!‘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통증은? 통증은 어디로 갔지? 어이, 통증, 너 어디 있는거야?‘
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아, 여기 있었군. 그래, 뭐 어때, 거기 있으라고.
그런데 죽음은? 죽음은 어디 있지?‘
그는 오랫동안 곁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의 공포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음은 어디에 있지? 죽음이 뭐야? 죽음이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 어떤 공포도 있을 수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갑자기 그는 소리쳤다.

희망을 북돋아주는 의사의 말에 한결 고양되었던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똑같은 방과 똑같은 그림들 커튼과 벽지, 조그만 약병들, 그리고 여전히 고통에 괴로운 육신. 이반 일리치는다시 끙끙 앓기 시작했다. 주사가 처방되었고 그는 의식을 잃었다.
그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에는 이미 어둑한 저녁 무렵이었다. 식사가 나오자 그는 억지로 고깃국을 조금 먹었다. 그리고 또다시, 똑같은 밤이 시작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7시 무렵에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가 어디 저녁 모임에라도 나가는 차림으로 방에 들어왔다. 풍만한 가슴을 받쳐올려 불룩하게 만들었고 얼굴에는 분칠한 흔적이 엿보였다. 저녁에 극장에 간다고 그녀가 아침에 이미 말한 바 있었다. 싸라 베르나르의 방문 공연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보라고
이반 일리치 자신이 고집해서 특별석을 예약해둔 상태였다. 그런데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던 그는 아내의 차림새에 잠시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간막이 특별석을 구해서 다 같이 가서 구경해라, 아이들의 예술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일 이다라고 고집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화난 기분을 내색하지 않았다ㆍ
~ ~

젊은 육체가 한껏 드러나게 차려입은 딸이 들어왔다ㆍ같은 육신이건만 그의 육신은 고통받고 있는데 딸은 그의 앞에서 제 몸을 뽐내고 있었다 ㆍ건강하고 아름답고,분명 사랑에 빠진 딸은 행복을 방해하는 질병과 고통,죽음 같은 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ㆍ
연미복을 입은 표도르 빼뜨로비치가 들어왔다ㆍ머리 한가운데에 가르마를 타고 곱슬머리 두 가닥을 이마 위에 내려뜨린 이른바 까뿔식이었다ㆍ
~
그의 뒤로 김나지움에 다니는 아들이 소리없이 따라들어왔다ㆍ새 교복을 입고 장갑을 낀 애처로운 모습의 아들은 눈 밑이 무섭도록 파랗게 그늘져 있었다ㆍ이반 일리치는 아들의 모습이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ㆍ
이반 일리치는 언제나 아들이 안쓰러웠다ㆍ잔뜩 겁먹고 아버지를 마음 아프게 바라보는 시선이 그의 마음을 두렵고 아프게 했다ㆍ게라심 외에 자신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정하는 사람은 아들 바샤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ㆍ
~
이야기를 나누다가 표드로비치는 이반 일리치의 안색을 살피더니 입을 다물었다ㆍ뒤따라 다들 그를 바라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ㆍ이반 일리치는 두 눈을 번뜩이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뭔가 못마땅해서 몹시 화난 것이 분명했다ㆍ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지만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ㆍ
우선 이 어색한 침묵으로부터 벗어나야 했다ㆍ
하지만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ㆍ겉으로 품위를 지키려는 거짓된 분워기가 깨져서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 모두에게 너무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싶었는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어 출구를 찾은 것이다ㆍ
‘‘그런데 이제 출발해야 돼요ㆍ시간이 됐어요ㆍ‘‘
리자가 아버지에게서 선물받은 시계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표도르 빼뜨로비치와 자기들만 아는 뭔가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일 듯 말 듯 주고 받더니 옷자락을 부스럭 거리며 일어났다ㆍ뒤따라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한 뒤 방을 나갔다ㆍ
모두들 떠나자 이반 일리치는 훨씬 편안해진 느낌이었다ㆍ거짓말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ㆍ하지만 그들과 함께 거짓말은 사라졌지만 통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ㆍ여전히 계속되는 통증과 여전히 계속되는 공포,그 모든 것은 더 힘들어질 것도,더 가벼워질 것도 없었다ㆍ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ㆍ
일분 또 일분이 지나고, 한시간 또 한시간이 지나도 모든 게 그대로이고 모든 게 끝이 없었다ㆍ피할 수 없는 종말이 점점 무섭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ㆍ
‘‘그래, 게라심을 불러오게.‘‘
그는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묻는 뾰 트르에게 이렇게 일렀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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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와의 만남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정교회출판사
2018.11.20초판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몸을 구성한다. 그안에서 영위하는 그리스도교적 삶의 궁극 목표는 예수 그리스 도의 신화(神化)된 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참여를 통한 이 구원은 교회의 성사적 삶 안에서 성령을 통해 성취된 다. 정교회는 신학을 전례와 경험을 통해 표현한다. 이것은 힘 겨운 시기 교회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암시해준다. 교회의 이 전례적 차원이야말로 오토만 제국이 비잔틴 세계를 지배한 4백 년 동안(1453-1821), 또한 20세기 초부터 중후반에 이르는, 러시아 공산 혁명 이후의 박해의 시기 동안, 정교회 신자들을 격려하고 교육했다.
정교회의 전례와 영성은 모든 감각에 호소한다. 이런 까닭에 이콘, 거룩한 형상은 아름다움과 영성의 감각을 반영한다.
이렇게 해서 가장 인상적이고 널리 인정받는 정교회의 특징이만들어진다. 이콘의 특수성과 다양성은 정교회 세계만의 오랜신학적 성찰의 열매이다. 그런데 이콘은 영예를 누리고 공경 받지만 결코 우상숭배 혹은 흠숭(예배)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색깔로 표현된 신앙이고, 동시에 변모된 우주의 일부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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