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아버님께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서른 중반의 나이에 삶의 멍에를 담 짐 지우지 못하고 들꽃이 좋아 홀연히 흙으로 서둘러 돌아간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 얼굴도 기억하기 힘든 코흘리개 시절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살았던 삶에 다산은 더욱 큰 어른으로 다가온다. 생계와 자식교육을 모두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자애로움이 곳곳에 녹아 있다. 비록 유배지에서 자식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변함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자식들을 향한 다산의 큰 사랑은 도도히 흐르고 있다.  

  아버지가 생존해 있다면 다산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 여기며 오늘도 가슴 끝까지 갈망하던 부성애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 속에는 자식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곳곳에 배어나 부모 역할의 귀감을 보인다. 두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에서도 훈계 일변도로 흐르기보다는 감성적인 표현으로 가슴 속 잔잔한 감동을 전해줬다. 그는 생활 속에서 근검과 절약을 실천하며 열심히 살아가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으며 당신 스스로 자식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각기 다른 빛깔과 삶의 무늬로 수놓으면 지내온 일상의 궤적에 따라 우리네 삶을 행복과 불행으로 재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산은 젊은 나이에 정계로 나가 붉은 비단옷을 입고 그 능력을 인정받으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듯해 보였지만 출세해 영화를 누린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다산의 재능을 열어주고 후원했던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은 신유년 새로운 탄압으로 이어져 대대적인 박해에 들어갔다. 당색을 달리하는 유파들과의 잦은 다툼, 돌풍처럼 닥친 천주교 박해로 집안의 재앙은 잇달아 일어났다. 학연의 셋째 큰아버지는 참형에 처해지고 둘째 큰아버지는 흑산도, 아버지는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다. 학연이 의지하고 따랐던 사촌 형 철상의 참형은 가공스런 일로 참혹한 아픔으로 이어졌다.

  18년이라는 긴 유배 기간 감금의 시간으로 불평이 쌓일 법도 하지만 다산은 다산초당에서

후학들 강의에 힘쓰고, 저술에 몰두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잘하면 신의와 공경 등 세상의 아름다운 가치 실현이 된다고 믿으며 소신 있는 강연에 나섰다. 단 하루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던 다산은 강의할 때에도 본질적인 궁구를 통해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였다. 함께 기거하지는 못하더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식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살가운 정을 쌓아왔던 다산의 모습이 더욱 단아하고 맑게 다가온다. 당호를 수오재로 짓고 의연하게 지냈던 첫째 큰아버지의 삶과 남편을 유배지로 떠나보내고 힘든 기색 없이 가정의 어른으로 그 역할을 다해 온 어머니의 삶 역시 숭고한 빛을 발한다. 

  공부를 목적으로 다산초당의 아버지를 보필하며 지낸 학유는 큰 산 같은 아버지의 선비 정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식구들을 향한 정이 무엇보다 뜨거움을 확인한다. 시집가는 딸에게 다산은 직접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는 병풍을 만들어 줘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였다. 초당에 머무는 동안 학유에게는 학문에 정진하면서도 그 벗들과 우의를 다지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선택과 의지와는 뜻하지 않은 일로 나락으로 떨어져 생활하게 될 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선비의 올곧은 삶의 자세로 일관하여 지냈던 분을 다시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