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면 온기가 전해져 온다. 나란히 길을 걸으며 서로 정을 나누는 시간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 중에서도 빠질 수 없는 이야기는 장래 희망 관련한 대화다. 꿈이 뭐냐고 물을 때면 아들은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망설인다. 자신의 생각을 속시원히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어떤 것이든 말해보라면, 아들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아들이 이루고 싶은 소망은 경찰관, 축구 선수, 어른, 선생님, 의사 등으로 상황에 따라 바뀌어 갔다. 그 중에서 특이한 소망 중 한 가지인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를 물었더니 간섭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2학년 이슬비 목 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예쁜 이름만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아이다. 주말을 앞두고 선생님은 ‘나의 꿈’관련 글짓기 숙제를 내주며 잘 써온 학생에게는 상장을 준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웅성거리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한창 놀고 싶은 때 쉬지도 못하면서 원고지 5장을 채워야하는 부담이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컸을 듯하다. 슬비는 단상에 올라가 상받는 행복한 일을 상상하며 글쓰기 숙제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일요일 아침 글짓기 숙제를 위해 책상 앞에 앉은 슬비는 생각이 좀체로 떠오르지 않아 궁리하고 있는데 엄마는 동생을 보라는 말을 남긴 뒤 집을 나섰다. 미용실로 쏘옥 들어가는 엄마를 발견하고 따라 들어간 슬비는 큰 혹을 붙여 나왔다. 글짓기 잘하는 아람이 받은 상장 소식을 접한 엄마는 상장을 목표로 슬비에게 글짓기를 밀어붙였다. 글짓기 숙제가 나올 때마다, 아들에게 꼭 상을 받아 보자며 다짐을 받아두던 현실 속의 나를 보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엄마는 슬비에게 뭐가 되고 싶은지 채근하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슬비는 엄마가 정해 둔 인정받는 꿈과는 거리가 먼 꿈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미용실에서는 헤어디자이너, 학교 앞을 지날칠 때면 슬비 문방구 주인, 파티를 도와주는 파티프래너 등을 꿈꾸지만 엄마는 그런 것말고 근사한 직업을 원한다. 뜻대로 되지 않자 엄마는 아픈 사람 돌보는 의사를 추천하며 그에 걸맞는 글을 쓰도록 조언했다. 엄마는 자신이 불러주는 글을 슬비가 제대로 받아쓰지 못하자 화를 내며 자신이 왼손으로 원고지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튿날 원고 숙제를 걷는 교탁에 슬비는 원고를 낼 수가 없어 망설이다 다시 써오기로 마음 먹고 하루 유예를 청했다.
슬비는 말처럼 글을 쉽게 쓸 수가 없었지만 자신이 꿈꿔 왔던 소망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새겨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슬비는 원고지에 소망을 수놓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원고지 8장을 거뜬히 채울 수 있었다. 어른들이 상정해 둔 근사한 직업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그 일을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신명나게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정해 둔 꿈을 강요할 수 없다. 무엇이든 이뤄 낼 씨앗을 타고난 아이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그 씨앗이 제대로 발아할 수 있게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