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 - 배반의 역사로 잃어버린 궁극의 맛을 찾아서
김현진 지음 / 난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의, , 주를 이야기한다.

먹고, 입고, 자는 공간이 있어야만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세가지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선택하라면 먹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옷이야 없으면 벌고 벗고 살면 되고, 집도 없으면 나무 위나 동굴 같은데서 살면 되지만, 먹을거리가 없으면 인간의 삶은 며칠을 넘기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유대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각기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켜 왔으며, 그중에서도 음식코드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음식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종교는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상보적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상호 깊이 의존하고 있어서 음식과 종교가 별개로 다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P. 212.

 

인간의 삶과 역사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먹을거리는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족했다.

바로 2백년전만 해도 먹을거리가 없어 굶어죽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산업이 발달하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에도 세계인구의 상당수는 굶주림에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왜 모든 인류가 충분히 먹고 살아갈 수 있을만큼 먹거리가 생산되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만들어진 먹거리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지지 않고 편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가진자들에게 넘쳐나는 엄청난 양의 먹거리가 버려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풍족한 먹거리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중에서도 정말 인체에 좋은 먹거리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고, 나머지 나름 먹고살고 있다는 사람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정말 좋은지 어떤지도 모를 음식들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먹는 자라고 모든 먹거리를 독식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편향된 영양의 배분은 사회적 영양실조를 초래한다. 한 개인의 폭식이 그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한다면, 특정한 계층의 폭식은 그 사회의 건강과 안전을 파괴한다. 그래서 폭식은 죄가 되는 것이다.” - P. 11.

 

인류의 역사에서 먹거리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이다.

신화시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인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기후, 생활방식에 따라 다양한, 그들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어왔고, 전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각자의 지역과 국가내에서 자신들의 먹거리 문화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계가 하루 생활권이고, 인터넷을 통해서는 1초도 안되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 지역의 음식과 조리법을 찾아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식탁은 권력의 연장선이다. 우리의 식탁이 어떻게 꾸려지고 있는지는 우리가 어떤 권력관계에 놓여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소외계층에게 먹고 마시는 것은 생존의 문제로, 삶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다. 이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전략은 나누고 함께 먹고 즐기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식탁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하다. 누구와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최종적으로 사회의 모습을 달라지게 할 것이다.” - P. 142~143.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 배반의 역사로 잃어버린 궁극의 맛을 찾아서>는 신화속에, 그리고 인류의 종교 이야기안에 담겨있는 음식들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먹거리 문화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책이다. 또한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자연과 모든 생명들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먹거리 종류와 그것을 먹는 방법과 형태가 곧 우리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거울임을 이야기한다. 과거의 다함께 나누고 먹는 생활에서 이제는 그냥 내 가족, 나 혼자만의 먹거리와 식사문화는 현대를 고독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닌 함께 더불어 먹고 살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음식과 관련하여 신화에서 던져지는 인생에 관한 질문들은 인류학적으로 매혹적일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심오하다. 또한, 음식문화나 규정들은 현대인들에게도 윤리적 관점을 제시한다. 인간의 삶과 역사를 관통하며, 인간 본성과 그것에 기인한 인류의 미래를 성찰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상수의 역할을 해왔다.” - P. 14.

 

먹는다는 것은 한 생명을 살리는 활동인 동시에 다른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다. 우리 존재는 이 역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 실존의 한계와 모순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음식과 삶에 대한 오만이 좀 더 소박해질 수 있다.” - P. 50.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간혹 인간관계를 먹고 먹히는 형태로 비유해 표현한다. 가정, 직장, 남녀 사이에서 누구든 먹고 먹히는 관계에 빠지기 쉽다. 어쩌면 그것이 약육강식의 세계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계의 현실을 당연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조금이나마 희생 대신 생명의 회복을 꿈꾸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무엇인가를 먹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스토리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P. 82.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했던가.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말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한집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각자 다 따로 움직이고 먹는다.

너무나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같이 식사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리라.

그렇더라도 온가족이 모여 함께 이야기나누며 식사를 하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의 밥상이 살아나야 우리 사회의 공동체밥상도 살아날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보다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해질 것이기에.

 

가정의 밥상이 무너지고, 사회의 공동식사가 사라지고, 나누어 먹는 식탁공동체의 정신이 상실된 시대에 우리가 고독하게 홀로 남겨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밥상을 회복하여야 한다. 건강한 음식과 가족들의 삶이 함께하는 밥상공동체를 회복하여야 한다. 그것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서로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파편이 된 개인들을 연결해주는 길이다.” - P. 157.

 

조금만 더 적게 먹고, 조금 더 순환의 속도를 늦추는 삶은 생각보다 많은 생명에게 삶을 돌려줄 수 있다. 식생활을 바꾸는 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과잉영양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아직도 더 기름지고 푸짐한 식단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굶주림의 기억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다. 이제 그 도착증세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 P. 259.

 

음식문화는 그 사회와 시대의 정신만큼 성숙한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음식문화를 회복하고 가다듬을 필요가 절실하다. 우리의 식탁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과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는 지적, 정신적 성숙을 이루어내야 한다.... 신들의 향연은 아니더라도, 인간의 만찬이 풍성해지는 것은 함께 나눔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인간됨을 선언하고 인간의 만찬을 차리기 위해서는 강자가 약자를 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는 밥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P. 26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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