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더듬는 약점을 감추기 위해 내가 하는 노력은 가상할 정도이다.
약점을 숨기려는 것이 회피의 방편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태도가 되어 내 삶을 끌고 갔다. 내 삶은 냉소의 무력함과 자기 위안의 메커니즘 속에서 굴러갔다.(181쪽)
하지만 희진의 필터를 통해 본 나의 모습은 문학소녀를 가장한 공주 그 자체이다.
연설을 잘하진 못하겠지만 사교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녀가 그 정도를 치명적 장애나 결핍이라도 되는 듯이 감추려 들고 괴로워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와 결핍을 가까이에서 본 적 없는 그녀의 '공주다움'이었다.(189쪽)
소설의 화자인 나(김유경)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느새 유경의 필터를 통해 바라본 세상에 공감하게 되는데 희진의 소설 속의 다른 시각을 통해 균형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자신이 받은 모멸감으로 인해 누군가에겐 중요했을 연락을 전해주지 않거나,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뻔히 알면서도 사감에게 밀고하는 삐뚫어진 매몰찬 마음을 공감하기는 어렵다.
어느 해 가을인가 유난히 단풍의 색이 곱게 느껴졌다. 단풍이 이렇게 멋졌던가? 여기며 감탄을 거듭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봄에 지천으로 피는 꽃, 가을이면 곱게 물드는 단풍을 제대로 본 적이 있던가 싶었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을 보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마음은 주변의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사정을 헤아릴 여유도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각자의 '다름'은 이질감으로 느껴지고 제대로 '섞임'을 통해 각자의 다름을 개성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나의 결핍에 빗대어 인식되는 상대의 풍요로움은 미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제 어리다고 말하기엔 많은 시간을 통과해 온 지금의 '나'는 어떨까?
중심에서 벗어나 가장자리에 있을 때 전체가 더 잘 보이듯이 주변을 헤아리는 눈과 마음이 생겼으리라 짐작한다.
일부러 찾아서 읽고 보는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그 당시의 자신을 쓰다듬고 토닥이는 이야기가 많다. 현재를 살아가며 무언가에 자꾸 턱턱 걸릴 때, 주저하고 발을 내딛지 못할 때 내 안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마주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내 안에 웅크린 어린 나를 만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시간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지나온 시간 속의 어린 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이유일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