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서장의 첫 문장부터 이미 글쓴이는 '사흘 전 제네바를 떠나 느긋하게 자그레브에 도착해'있다.
그동안 '나 갑니다~ 나 인제 가요~'하고 호들갑스럽게 묘사되는 여행의 시작에 익숙해졌던 걸까.
이 책은 시작부터 반전 아닌 반전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잠깐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것 같이 담담하게 서술되는 문장이 읽는 사람의 허를 찔렀다.
저자는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내가 여행을 해야하는지, 왜 그곳으로 여행을 해야하는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 책.
뜬금없지만, 이 책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인상 깊은 점은, 책에 '사람'에 대한 묘사가 많다는 점이다.
단순한 외양이나 행색뿐만이 아니라 말투, 인상, 생각에 대해서도 무척 세밀하게 묘사되어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맨 첫 장의 흑백사진을 빼고는 사진 한 장 없음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그 사람이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보다 문물이 덜 발달한 1950년대에 이 책의 작가는 용감하게 발칸반도부터 시작해서 아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시작하는 발칸반도는, 지금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여러 갈래로 갈라졌지만, 저자가 여행하던 당시만 해도 유고슬라비아라는 한 나라로 이루어져있던 때였다.
예로부터 다양한 환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민족들이 뒤섞여 살아가던 땅이라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여러 민족들이 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듯 하면서도, 불화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한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점점 동쪽으로 이동하여 이스탄불을 지나 터키의 내륙으로 이동해가면서 혁신의 가치는 점점 무뎌지고 잊혀져가고, 사람들에게 오래된 관습이 미치는 영향력은 강해져가고,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은 문제가 벌어지는 걸 생각하면 참 인상깊은 대목인 것 같다.
1권은 이란 국경을 넘는 것으로 끝났다.
앞으로 2권, 3권에서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