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용도 1 (반양장) - 발칸반도.그리스.터키, 봄꽃들이여, 무얼 기다리니 세상의 용도 1
니콜라 부비에 지음,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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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용도.

책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의 인상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철학책 같다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세상 사용 설명서' 같은, 완전히 딱딱한 느낌이거나.
실제로 받아본 책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에 공책처럼 얇은 두께, 심플한 것을 넘어서 심심하기까지 한 표지 디자인에
책날개조차 없는 간소함.
책의 모습은 자체만으로도 여행의 간소함을 형상화한 듯 한 모습이었다.
표지를 넘기자 저자인듯한 한 남자가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이 보인다.
남자의 뒤로 뻗어있는 길과 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언덕인지 산인지 모를 풍경들.
책장을 넘기자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근래에 출판되는 여행책들과는 다르게 코팅된 고급 종이가 아니라 미묘하게 노란 빛을 띄는 듯한 소박한 느낌의 종이였다.
 
가서 살든지, 아니면 머무르다가 죽든지 하련다.
셰익스피어
   
수수께끼 같은 모습의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이 문장만으로도 이 여행이 어떤 여행이 될 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통 여행기들은 대개 시작하는 방법이 비슷하다.
우선, 글쓴이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에게 설명한다.
자기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그런데 어떤 계기가 있어서 여행을 시작하게 됐고, 여행을 가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였고... 등등.
그 다음은 본인이 가고자 하는 여행지와 그 여행지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뒤를 잇는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부터 얻는 힐링, 역사와 예술이 만들어낸 위대한 유산, 낯선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얻는 새로움 등.
그러고나서 드디어 여행은 시작되고, 글쓴이는 우리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설레고, 떨리고,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운지를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곧 도착한 여행지에서 여러 가지 좌충우돌 에피소드들과 그에 따라 글쓴이가 느끼는 감상과 깨달음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
서장의 첫 문장부터 이미 글쓴이는 '사흘 전 제네바를 떠나 느긋하게 자그레브에 도착해'있다.
그동안 '나 갑니다~ 나 인제 가요~'하고 호들갑스럽게 묘사되는 여행의 시작에 익숙해졌던 걸까. 
이 책은 시작부터 반전 아닌 반전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잠깐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것 같이 담담하게 서술되는 문장이 읽는 사람의 허를 찔렀다.
저자는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내가 여행을 해야하는지, 왜 그곳으로 여행을 해야하는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 책.
뜬금없지만, 이 책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인상 깊은 점은, 책에 '사람'에 대한 묘사가 많다는 점이다.
단순한 외양이나 행색뿐만이 아니라 말투, 인상, 생각에 대해서도 무척 세밀하게 묘사되어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맨 첫 장의 흑백사진을 빼고는 사진 한 장 없음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그 사람이 생생하게 눈 앞에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보다 문물이 덜 발달한 1950년대에 이 책의 작가는 용감하게 발칸반도부터 시작해서 아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시작하는 발칸반도는, 지금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여러 갈래로 갈라졌지만, 저자가 여행하던 당시만 해도 유고슬라비아라는 한 나라로 이루어져있던 때였다.
예로부터 다양한 환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민족들이 뒤섞여 살아가던 땅이라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여러 민족들이 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듯 하면서도, 불화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한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점점 동쪽으로 이동하여 이스탄불을 지나 터키의 내륙으로 이동해가면서 혁신의 가치는 점점 무뎌지고 잊혀져가고, 사람들에게 오래된 관습이 미치는 영향력은 강해져가고,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
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은 문제가 벌어지는 걸 생각하면 참 인상깊은 대목인 것 같다.


1권은 이란 국경을 넘는 것으로 끝났다.
앞으로 2권, 3권에서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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