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꽃 -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미술 수업
이경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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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할머니('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가 공식적인 용어인데... 너무 길어서 그런지 아무리해도 입에 잘 안 붙는다. 양해 바람.) 문제가 제기된 지도 이제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가 전세계에 많이 알려졌지만, 일본 정부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나도 할머니들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가끔씩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진정한 사과란 과연 어떤 것일까.

어떤 식으로 해야한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있는지. (일본의 배상? 안타깝지만 인터넷에 한일기본조약에 관해 조금만 검색해봐도 어렵다는걸 알 수 있다.)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일본정부? 고노담화도 수정하려고 드는 우익놈들이 과연 사과를 할까?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다. 일왕? 일본인들이 일왕을 살아있는 신으로 여기는 한 가능할리가...)

 <못다 핀 꽃>에 등장하는 할머니들도 처음에는 용기를 내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였던 것을 증언만 하면 그동안 있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기대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에 그림을 통해서 조금씩 묵은 상처를 치유해나가게 된다.

 

 <못다 핀 꽃>. 이 책에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미술 수업'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책은 제목 그대로 글쓴이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면서 겪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전에 서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소재로 만든 문구류를 본 적이 있어서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는건 알고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책이 있는걸 알게 되고, 인터넷에서 서평 이벤트를 하는걸 알게 되어 자연히 읽어보게 되었다.

 

 책에는 여러 할머니들이 등장하는데, 모두가 각자의 개성이 또렷한 분들이시다.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나 자신이 이 할머니들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너무 뭉뚱그려서 생각하지 않았나 하고 좀 반성했다. 각자 고향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참담한 고통을 겪은 후의 인생도 다 다른 분들인데, 나도 글쓴이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그 분들을 '고통'이라는 단어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고통, 치욕, 수치... 한 때 이런 단어들이 할머니들의 인생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었을지 몰라도, 이 용감한 할머니들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순 없다. 길지 않은 이 책 속에 나온 에피소드 중에 인상깊었던 한 가지가 바로 '그림 사과 사건'이었다. 직접 고통을 겪지 않은 제삼자의 경솔함이 할머니들에겐 또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느꼈다.

 할머니들은 처음에는 젊은 처자인 미술선생을 좀 못미더워하지만, 점점 더 그림을 통해 내면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고,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예술의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지. 그다지 길지 않은 책이지만, 책 속에서 그림을 통해 용기를 얻어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고, 일본에서 전시회를 여는 모습에 내 마음도 뿌듯해졌고, 강덕경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끝내 눈물이 났다. 강덕경 할머니는 이 책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시는데, 한 평생 외롭고 쓸쓸하게 사시다가 그림을 통해서 점점 마음의 문을 여는 모습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아, 이 얼마나 마음의 위안이 되는지. 진정한 위안이란 이런 것이지, '위안'부의 위안이 아니다. 현해탄 너머 마음이 일부 얼어붙은 사람들도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이 다 세상을 떠나서 용서를 빌 기회조차 잃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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