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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래서 쓴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사이연 옮김 / 비트윈 / 2023년 10월
평점 :
연초부터 <시·에세이 창작반> 수업을 진행하면서 ‘글쓰기’와 독서에 대한 생각이 담긴 작가들의 책을 여럿 읽었습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하여』, 알베르 까뮈의 『작가수첩』, 어슐러 르 귄의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올가 토카루츠크의 『다정한 서술자』, 버지니아 울프의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 등을 비롯해 많은 책을 살펴보고 일부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 책들을 모두 만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 이들이 쓴 책이라고 해서 끄덕일만한 것으로 모두 채워진 것도 아니니까요.
최근 우연히 『나의 투쟁』으로 유명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는 이래서 쓴다』를 만났습니다. 책이 참 좋습니다. 90페이지를 약간 넘는 책이 16,000원이어서 책의 분량에 비해 비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책을 읽으며 사라졌습니다. 탄생할 가치도 없는 짜깁기 자기계발서들이 그만한 가격에 팔리고 있는 세상에서 책의 가치를 놓고 본다면 『나는 이래서 쓴다』의 탄생의 의미는 차고 넘칩니다.
꼭 읽어야 할 내용들로 압축된 느낌을 주는 책이고, 글쓰기를 시작하는 분들이나, 글쓰기의 의미를 진중하게 다시 새기고 싶은 분들에게는 의미 있는 만남과 지침이 될 책입니다. 『나는 이래서 쓴다』의 도입부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종 사건과 사물들과 사람들이 계속해서 서로서로를 이어가는 시간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계속 이렇게 끝없는 복잡함 속에서 살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속에 매몰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각종 범주와 순서와 위계로 구분지어서 우리 자신을 분류하고 정리합니다.”
우리는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그 단순함과 복잡함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세계의 현상이 누군가에게는 단순하게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복잡하게 보인다면, 실제의 세계는 그 어느 쪽도 아닐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혹은 복잡하게 보는 인간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생은 어떨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이의 삶이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이제 그걸 단순하게 “그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고 표현하거나 “그는 어쩌고저쩌고한 상황에서 태어났는데, 어쩌고저쩌고 살다가 어쩌고저쩌고한 상황에서 죽고 말았어.”라고 조금은 덜 단순하게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쓰거나 말하거나에 따라서 그렇게 달라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의미가 바로 그것에 있을 겁니다.
책속의 좋은 문장들을 더 소개하고 싶지만, 공들여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래서 쓴다』는 글쓰기 작법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그런 내용이었다면 소개하지 않았을 겁니다. 많은 책들을 소개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책은 소개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글쓰기의 의미를 담은 책들도 그랬던 것 같은데, 매력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 천세진(소설가, 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