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 너무 좋다. 꺼벙이, 요철발명왕부터 강풀, 최규석까지 난 만화라면 사족을 못 쓴다. 내가 가진 유전인자와 비슷한 만화책으로 어렵다는 인문학을 풀어낸다면 난 또 얼마나 쉽고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십자군원정대여, 지금 그 진실을 묻겠노라,   

기대와 설렘으로 분위기 파악 할 겸 대충 몇 장을 넘겨보는데
흐느적거리는 그림체, 허용수치를 뛰어넘는 부담스런 말풍선,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것 처럼 보이나 사실은 만화의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박스설명
분위기 파악 할 겸 대충 몇 장을 넘겨보는 것만으로 나는 통독한 것으로 간주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 동안 책장으로 많은 책들이 들고나는 사이 유독 내 눈길이 머무는 책, 바로 십자군이야기. 정독을 하지 못했다는 스스로의 반성이기 보다, 유별난 판형 때문에 어느 자리에 꽂아놓아도 삐쭉이 튀어나는 모양새 때문.
이렇게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흐느적거리던 그림체는 유려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부담스러웠던 말풍선도 쭉 읽다보니 그리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군데군데 나오는 박스설명은 읽고 싶으면 읽고 아니면 건너뛰다 보니 책 읽는 리듬에 방해되지 않았다. 처음에 이 책에서 느꼈던 거리감을 극복하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십자군이야기에 풍덩 빠지는 것 뿐.
십자군원정대여, 지금까지 너 어디에 있었느냐,  

아무리 중세시대라지만 대규모 군사원정이 이토록 얼렁뚱땅 시작될수 있었다니, 하긴 미국의 온갖 침략전쟁을 보면 그 당시가 휠씬 절차적으로는 민주적이었는지 모른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하지 못 하며,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보게 되는 온갖 부조리와 부폐. 그들에게는 이미 신의 이름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으리라. 

이 책은 삐뚤어진 지난 날의 기록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다. 그런 기록들이 가능했던 잘못된 역사인식과 그런 기록을 무비판으로 받아들여 삐뚤어진 역사를 확대재생산하는 기존관념에 대한 호된 꾸지람이다.

중세시대 암울함이 기계문명을 넘어 선 지금 이 시대에 과연 극복되었는지, 미국을 예를 들어가며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는 제노사이드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인류 역사상 제노사이드에 대한 트라우마가 어찌 십자군전쟁뿐이겠는가. 그런 상처가 치유되기는커녕 오늘날 벌어지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내성으로 작용되는 현실을 경계해야 한다.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은 본질은 외면한 채 오히려 충돌을 부추키는, 마땅히 폐기되야 할 주장이다. 

이 책은 화려한 비쥬얼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인식이라는 것을 지난 날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앞날에 대한 지향을 제시한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그저 역사왜곡을 극복하자는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앞날에 대한 공정한 시작을 마음먹게 한다는 점이 내가 느낀 최고의 감동이리라. 

만화책은 잘 사지 않는다. 일반책에 비해 후딱 읽을 수 있으며, 밑줄 쳐 가며 나중에 다시 읽으며 그 감동을 되새겨야지 하는 간절함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밑줄만 쳐 놓을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러다가, 간혹 만화책도 살 경우가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역사적 사명감이 용솟음칠 경우,
예를들면 허영만의 오 한강, 최규석의 100도씨 같은 경우.
사실, 만화책이라고 해서 구지 일반책과 구분할 필요는 없다. 묘사와 서술의 차이일 뿐, 지은이의 생각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읽는이의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니깐.  

   
사족 - 만화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초등학교 1학년 우리 둘째가 쇼파 위에서 몇날 며칠을 뒹굴거리는 이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면 이 책은 만화책으로서 자질을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한다.
하지만 이 녀석이 이 책을 거들떠보는 날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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