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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문화사 - 작은 발이 걸어간 길을 찾아서
데틀레프 블룸 지음, 두행숙 옮김, 고빈 사진 / 들녘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공간’의 문제를 다룰 때 그것을 단순히 양적 연장(extension)의 맥락으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공간은 결코 즉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공간을 실생활에서 체험하므로 그것은 차라리 ‘삶세계’(Lebenswelt)로서의 공간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생활역학’으로서의 공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는 개인이 그 공간을 받아들이는 ‘지각’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개입 된다. 데틀레프 블룸의 『고양이 문화사: 작은 발이 걸어간 길을 찾아서』(두행숙 역, 들녘, 2008)는 이러한 맥락에서의 공간-삶세계로서의 공간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양이 문화사』는 고양이들과 30년 넘게 같이 살아온 저자가 “고양이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그것의 행동과 관련된 모든 관점들은 물론 고양이에 대한 문헌, 영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온갖 현상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충실한 문헌과 자료를 다루고 있는 책에 걸맞게 이 책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 역시 여러 개가 될 수 있겠지만, 하나의 삶세계로서의 공간 안에서 다소 기이한 형태로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두 개체-인간과 고양이의 모습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늘날 인간과 고양이는 같은 생활공간에서 ‘불편한’ 동거중이다. 인간은 길거리의 주인 없는 고양이들을 지극히 ‘인간적’ 관점에서 친히 ‘도둑고양이’라 이름 붙여 준다. 애완동물로 집안에서 직접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는 어떠한가. 심지어 그 경우에도 고양이는 결코 쉽게 주인-인간에게 다가서주지를 않는다. 일반적인 애완동물과는 달리 “오직 고양이의 경우에만 책임 있는 약속을 하기가 불가능하다.” 이쯤 되면 인간은 어쩌면 고양이를 ‘짝사랑’하고 있다고 고쳐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앞발톱은 때로는 따가운 가시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고양이가 한 공간 안에서 서로 가까워지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인간과 고양이의 친밀성을 상징적으로 떠올리게 해 주는 공간이 있다. 벽난로, 부뚜막, 오븐, 화덕과 같은 공간을 말한다. 따뜻한 벽난로 위에 올라가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고양이의 정경을 떠올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심지어는 ‘직업’을 가지고 인간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고양이들도 존재한다.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설치류들로부터 우편물을 보호하기 위해 우체국에서 일하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전화 케이블을 관 속으로 끼워 넣는 일을 맡고 있는 고양이, 극단이나 서커스와 같이 서비스업과 오락 및 연가 분야에서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고양이 등이 존재한다.
인간적 지각의 대상으로서 공간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매력적인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간의 ‘도시’ 담론은 급속한 자본주의의 발달로 대두된 ‘대도시’(metropolis) 담론으로 그 외연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고, 최근에는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줬던 서울시 시청 앞 공간 담론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로 인해 촉발된 광화문 일대의 공간 담론으로 하루가 다르게 첨예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고양이 문화사』는 미시-문화사적 맥락에서의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 담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