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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時務의 역사학자 강덕상 - 자이니치로서 일본의 식민지사를 생각한다
강덕상 기록 간행위원회 엮음, 이규수 옮김 / 어문학사 / 2021년 10월
평점 :
시무의 역사학자 강덕상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시대의 의무, 지금의 역사학자가 해야할 일에 투철하신 분이셨다는 것을 240쪽 남짓한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을 통해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강덕상 선생님은 사실 자이니치 문제를 다루는 학자분으로 생전에도 존함은 듣고 있던 분이었는데(국내에도 1권이 번역되어 나온 여운형 평전으로 한국독립기념관 학술상을 수상하시기도 하셨죠) 금년 타세 후 이렇게 관련서가 어문학사에서 나오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이러한 자이니치 문제에 평생을 천착한 강덕상 선생님의 회고를 중심으로 대체로 시계열적으로 엮어지고 있습니다. 진주에서 출생하여 2살즈음 일본에 건너와서 모국어를 일본어로 쓰며 지내던 어린 시절, 조선인 어머니가 부끄러워서 학부모회 통지서를 다 찢어서 학교에 온 어머니 사진이 없는 내용, 중일전쟁 시절이었던터라 항상 학교 내에서 전쟁놀이하면 일본인에게 패배하는 중국인편으로 나와야 했었던 울분이라거나.. 창씨개명도 물론 나오고, 그러다가 어찌하여 민족의식을 자각하여 다시태어나게 되었는지, 최창화 목사님의 감화로 신노 사토시에서 강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담담한 회고 속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책 중간에도 종종 나오지만 기껏 조선인들끼리 모이고도 -레드퍼지 반대운동으로 고바야시 마사루와 이야기를 나눌 때- 조선어 명도 숨기고 조선 이야기를 하지 않는 모습은 프로레슬러 역도산이 외부에서는 단 한번도 한국어를 쓰지 않았던 사실을 연상시킵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디아스포라에게 주류사이에서 민족적 색채를 보인다는 것은 꺼려지는 일이었겠지요. 강덕상 선생님은 회고에서 이 일을 부끄러워 합니다만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방어 기제랄까요.
아무래도 조총련색이 자이니치 전체에 강하기는 하나 꼭 친북의 레테르를 붙여서 볼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저자인 강덕상 선생님은 동생의 입을 빌려, 북송선을 탔던 동생이 북한으로 따라 가려는 아버지에게 '오지마라'라고 편지를 보낸 것이나, 북송에는 무슨 음모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걸리적 거리는 이를 북으로 보내려는 정부의 음모라던가- 하는 내용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빠칭코가 잘된다고 하여 큰맘먹고 뛰어들어 동업하다가 망해서 빚을 10년동안 갚았는데 그간엔 그 이전의 예리한 논문들 같은걸 하나도 못쓰고 잡글이나 썼다는 대목이라던가 하는 것을 보면 이분도 다른것을 삼가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대체적으로 매진하셨기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전혀 여담이지만 강덕상 선생님이 대학 졸업후 입사지원 했다가 떨어졌던 三一書房에서 이 책을 내게 되었다는게 뭔가 운명의 아이러니처럼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