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교과서 국어영역 문법 - 2014년 누드교과서 2015년
김민정.이투스 국어 연구소 지음 / 이투스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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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4
김수경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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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리뷰의 제목에 엄청난 의문을 가질 것이다.

‘고수가 부럽다고?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하고 지나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든, 아니면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든

일단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리뷰를 쓴다.

 

고수는 북을 치는 아이이다. 신내림을 받지 못한 엄마와 가장 소중한 것들을 소중히 대하지 못하는 아빠를 피해 고수는 도망친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은 가출청소년들의 집합소다. 고수는 그곳에서 히로를 만난다. (여담이지만 히로는 처음부터 이름이 찝찝했다. 왠지 자꾸만 히로x이 생각나서)

 

유명 비보이 그룹의 리더이자 뛰어난 싸움꾼인 히로는 어느 날 고수에게 상자를 전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평소 자신에게 잘 대해준 히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고수는 그 상자 하나가 그가 겪을 우여곡절의 시초였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지리산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캄차카마을에서 온 맨 손으로 곰을 때려잡는 할멈을 만나게 되고, 겨울이 온다. 산의 겨울은 유독 일찍 온다. 고수는 자신을 찾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피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깊은 산에서 겨울을 지내게 된다. 그 와중에 여러 일을 겪고 성장해나가는 -진정한 고수가 되어가는- 고수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이 책의 전체 줄거리이다.

 

싸움은 보통 주먹으로 하는 거라지만, 고수에게는 좀 다르다. 그는 리듬을 읽을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결국 그 재능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 화산과의 이별, 히로에게의 복수, 자기 스스로의 새로운 시작을 그는 북으로 알린다. 분명 종이 책임에도 불구하고 고수가 내뿜는 북소리의 진동이 손끝에 전해져 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웃긴 소설이다.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에서 소설 주인공, 열여덟 짜리 청소년에게 어른들은 싸우는 법을 알려준다. 게다가 적을 사랑하라는 엉터리 같은 말만 늘어놓는다. 아, 하지만 난 그런 고수가 너무나 부러웠다. 그런 싸움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어른’을 만난 고수가 부러웠고, 결국 자신의 리듬을 뿜어낸 고수가 부러웠다.

 

책의 결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 뒤의 히로는? 고수는? 할매는? 그 누구의 이야기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또 이렇게 지레짐작 할 수 있다. 고수는 샤먼의 북과 함께 누군가와의 싸움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는 걸.

 

‘어때? 헷갈리지? 다른 아이들도 너 때문에 그렇게 헷갈렸어.

엉뚱한 데를 디디기도 하고, 도무지 어떤 리듬에 맞춰야 할지 몰라 허둥댔지.

너의 그 거짓 가면 때문에 아이들의 발이 마구 꼬였다고.

이제 네가 나에게 맞출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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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한테 잘해줘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3
박영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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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시간이 날 때 ‘영우’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결론은 아직까지 난 이 책의 제목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추측은 얼마든지 해볼 수 있었다. 내 생각에 ‘영우’는 소설 속에 ‘나’ 자신인 것 같다.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소설은 전체가 ‘나’로 진행될 뿐,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거나 ‘나’ 스스로 ‘나’의 이름을 언급한다거나,

어쨌든 ‘나’라는 존재는 ‘나’로만 불릴 뿐 진짜 ‘나’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나’의 진짜 이름이 어쩌면 영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 책은 얼핏 보면 ‘자이언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가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엄연히 ‘나’이다. 목적 없이 과고를 준비하는 것도 ‘나’이고, 이유 없이 물건을 훔치는 것도 ‘나’이고, 가정 속에서 방황하는 것도 결국 ‘나’이다.

‘자이언트’는 그런 ‘나’를 ‘영우’로 만들어 주기 위해 누군가가 내려준 통과의례 같은 것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자이언트’에게 그런 의미를 주고 싶다. 만약 작가가 의도한 것이 답답해서 자살한 키티라고 해도, 난 꾸역꾸역 의미를 갖다 붙이고 싶다. 너무 안타깝고 아쉽기 때문에.

 

결국 ‘영우한테 잘해줘’라는 책의 제목은, 곧 ‘나’이자 ‘영우’인 친구에게 보내는

‘자이언트’의 마지막 부탁이 아니었을까? ‘네 인생에 잘해줘’ 같은. 친구는 위하는 마지막 마음.

‘영우’가 진정 자신의 삶을 살길 이야기 밖에서나마 바래본다.

 

“코끼리 발목을 잡고 있는 끈.

그거 누가 끊어야 하는지 아냐?

그래, 자기 자신!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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