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도토리 자매의 뿌리는 상처 입은 채이군요.
도토리 열매는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딱딱한 껍질 안에는
아픔이 고여 있고 망가진 울타리의 흔적만 존재합니다.
퍼 올리는 기억마다 충만함과 결핍이 혼재하는 것은
온전한 뿌리와 상처 입은 뿌리가 뒤엉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옮긴이의 말, 김난주씨의 글에서와 같이 도토리 자매가 퍼 올리는 얘기들은
많이 아팠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사랑스럽게 웃어주는, 하지만 훨씬 단단해진 친구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도토리 자매는 부모님, 삼촌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차례대로 그 존재의 부재를 맞이했다.
사랑하는 하는 사람을 잃는, 누군가의 존재가 하루아침에 '실재가 없는' '無'로 바뀌는 순간의 우울함과 혼란, 상처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이 도토리 자매에게도 묻어있다.
그런 온전한 뿌리와 상처 입은 뿌리가 뒤엉킨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마음 깊은 곳이 일렁이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P.71-72 :
어떤 사람이든, 잠시라도 좋으니까 어렸을 때의 자신을 만나러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어떤 기분이 들까, 부러울까 애절할까. 불타오르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 가장 뜨거울 때 '언젠가는 가슴 아파질 테니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같은 말을 하면 할수록,진정한 뜨거움에서 멀어지는 법이라 더욱이 우리에게는 지금밖에 없는 거지, 하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행복하고, 창밖으로 하늘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행복을 만끽하고 싶어 틀어박혀 있는, 아주 고마운 처지.
그런 상태인데도 역시 단 하루라도 좋으니까, 그날로 돌아가 피크닉에서 돌아오는 길의 엷은 어둠 속을 가족끼리 걷고 싶다.
도토리 자매는 억지스럽게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 그저 작은 일상을 매우 단조롭게 얘기해준다.
근데 그것이 특별하게 내게 따스함으로 다가와 위로가 되니 신기하기만하다.
이 책을 마주하고 한장 한장 넘기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고마워요. 도토리자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