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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ㅣ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이디스 워튼 지음, 김율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19세기 후반 남북전쟁이 끝난 미국의 뉴욕.
변호사 뉴랜드 아처는 메이 웰렌드란 여인과 약혼을 했다. 가족과 이웃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두 사람의 앞날은 행복만이 있을 것 같아 보인다. 한편, 폴란드 귀족과 결혼했던 메이의 사촌인 엘렌 올렌스카가 남편과의 불화로 뉴욕으로 돌아와서 지내게 된다.
엘렌은 남편과 이혼을 원하지만, 가족들은 그녀를 남편에게로 돌려보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변호사인 아처를 통해 그녀를 설득할 생각이었지만 아처는 그녀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아처는 관습과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엘렌에게 자꾸 끌리고 끝내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둘의 관계를 눈치챈 가족과 이웃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끝내 둘을 떼어놓는다.
19세기 후반의 뉴욕을 배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나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도 잘 모르지만 (아마) 근현대사에 해당하는 그 시기는 특히나 잘 모른다.
작가 이디스 워튼은 1800년 대 후반에 뉴욕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등단하고 결혼도 했지만 남편과 불화가 있었고 결국 이혼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작품의 엘렌 올렌스카에게 자신을 투영한 듯하다. 그녀의 삶이 이 주인공과 꼭 닮아 있다.
작품을 읽으며 상당히 거슬렸던 건 관습, 전통, 예법, 규율과 같은 단어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미국은 굉장히 자유로운 나라인데, 150여 년 전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위선과 가식들뿐이었다.
유럽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한 사업가들이었다. 이들이 모여 상류사회를 이루고 있었고, 진짜 유럽 귀족들이 그들의 재판관 역할을 한다. 귀족 아닌 귀족들의 귀족 행세는 그야말로 코미디와 같다. 그게 뭐라고 다들 서로 눈치 보고 경계하며 사는 건지... 모두들 아처와 엘렌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사교계의 예절에 어긋나지 않도록 입다물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땐 정말 소름이 돋았다. 메이도 그 가족도 전부다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 무서운 사람들!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엘렌, 전통과 규율에 따라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 메이. 둘 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견디며 살아간다. 두 여성 모두 만족스러운 삶은 아니었겠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진정 원했던 사랑이었던 엘렌을 가슴속에 묻고, 자신만을 바라봐 준 메이 곁에서 평생을 지내온 아처. 30년의 세월을 현실에 갇혀 살아온 아처는 엘렌을 마주할 기회에서 발길을 돌리 고야 만다. 관습을 외치던 사회는 그를 발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만들었다. 참으로 짠하고 착잡하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전혀 순수하지 않았던 순수의 시대.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순수하지 않은 시대. 진정한 순수의 시대는 언제쯤 오는 걸까..
※네이버 미자모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리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