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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막부의 멸망과 무진전쟁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이 처음으로 서양인을 맞닥뜨렸던 두개의 양요를 말하기 앞서 주변 동남아시아와 당시 유럽 열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훑는다. 국사가 아니라 동북아사를 중심으로 다시 살피는 세계사책 답다. 내전과 중국과의 관계로 골치를 앓던 베트남과, 막 아시아와 전세계로의 진출 욕심을 일궈가던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어떻게 극동의 한반도에 불씨를 퍼뜨렸는지 그 과정을 되짚어 가는 내용이 재미있다. 한반도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동북아 삼국의 역사를 살피게 되니, 필연적이게 아시아 주변국의 역사까지 건드리게 되는데, 이렇게 가끔씩 나오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가 비슷하면서도 마치 동북아 삼국의 운명의 평행우주처럼 펼쳐지는거 같아서 굽시니스트가 동남아시아 세계사를 써줬으면 생각도 하게 된다.
저자는 흥선대원군에 대해서 이전 편에서부터 드라마나 영화에서 마지막 쾌남처럼 다뤄진 흔한 그의 캐릭터 성을 해체하고 쇄국정책이 벌인 삽질을 조목조목 읊어준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이 다루는 역사의 쳇바퀴 지름이 그만큼 넓기에 필연적으로 갖게 된 시야일 것이다. 국사를 다루다보면 쇄국이 무조건적으로 나빴다고 말하기 애매하겠지만, 전세계의 흐름 안에 놓여진 조선사, 그리고 옆에 나란히 놓여진 이웃과 비교해보면 내부사정보다는 결과가 미래에 미친 영향에 아무래도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여하튼 흥선대원군이 벌인 몇 가지 내정의 실패와 천주교 박해에 대한 이야기는 근대의 무지로 설명하고 지나가지 못한다. 그 결과가 또 쇄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고, 양이와의 전쟁이 얼마나 시시한 원인에 의해 촉발되었는지를 까발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년이나 뒤처진 기술에도 전술과 근성으로 잠깐이나마 승리 경험을 하게 된 조선인들은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군함의 크기, 무기의 성능만으로도 궤멸을 면치 못했을텐데 서해안의 얕고 복잡한 지리적 특성과 국민성이랄까, 여러요인이 합쳐져 전투랄 것도 없던 병인양요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 때 프랑스인에게 이기고자 했던 조선인의 근성은 왜 양이를 해야하고 그들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은 눈먼 항전같았다. 지도자의 아집으로 내세운 기준을 따르다보니 모든 백성들마저 그저 공포에 질려 따르기만 했던게 아니었나 아쉽다. 조금이라도 편한 자리에서 서로에게 선한 호기심을 가졌더라면 근대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조선의 양이대항전이 끝나면 독자는 바야흐로 청의 마지막 암투의 시대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청의 혼란스러운 시기 때문만이 아니라도 무슬림과 한족의 동거는 신선한 것이었다. 그들에 대해 다룬 페이지가 적은게 아쉽긴 하지만 한족문화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소수민족을 다스려온 청왕조의 다양성이 그 순간 나에게 어쩐지 높이 평가되는 듯했다. 공친왕의 서양학습과 용굉의 양무운동도 인상적이었다. 서태후를 대원군에 빗대어 본다면 그들은 안타까운 개화기 지식인이요, 중간관리자의 비애였다. 베트남의 판타인잔이 너무나 발달한 문명에 기가죽어 패배주의에 젖은 것과 반대로, 태평천국과 염군의 난을 겪으면서 나라가 절딴이 났어도 공부를 하러 미국에 가고 서양을 알고자했던 양덕 용굉의 호연지기를 보자 난세를 겪어나가는 개인에게 강한멘탈과 스케일의 차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닐때만 해도 배낭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중에서 미국의 높은 스카이라인에 기가 죽어서 왠지 뉴욕이 불쾌하다고 말하는 속 좁은 학생들을 보았는데,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기 보다는 배우러 다녀온 뒤에 순수하게 감탄하고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발전의 가부를 좌우한다 하겠다.
같은 시기 유럽의 움직임을 서술하는 마지막 장에서는 어떻게 점차 커져가는 열강의 탐욕이 집요하게 아시아를 향하는지를 요약해서 묘사해놓았다. 굽시니스트 특유의 생략된 국가의 아이덴티티가 징그러운 사념체로 아이콘화되어 묘사된 독일제국의 통일과 프랑스와 영국의 정치, 그리고 일본의 등장을 다루었다.
다음 권에서는 책 전체에 걸쳐 근대 일본의 정치사를 다룰 것 같은데 기대되는 한편, 방대한 청나라의 19세기가 조선의 병인양요와 일본 막부의 멸망을 다루는데에 밀려서 살짝 적게 다뤄진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커다란 풍선을 누르면 공기가 움직이듯이, 한중일 세계사도 각 나라의 인과가 이어져 커다란 흐름을 이루는데, 그래서 유럽사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나라를 빼고 미시적으로 다루면 반쪽으로밖에 역사를 알 수 없는 것을 이번 편을 통해서도 잘 배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