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책의 내용과 구조가 처음 제가 서평을 신청했을 때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인간의 지혜가 어떻게 쌓여갔는지 그 비밀의 역사를 밝혀주는 인문학적, 철학적 서적이 아니라 '지혜'라는 개념을 인간이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책이었습니다. 방향성이 제가 기대했던 바와 달랐음을 눈치채고 책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식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책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책은 다루어야 할 주제인 지혜에 대한 정의도 처음부터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읽어가면서 이 책이 나열해놓은 내용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책이 나열해 놓은 지혜의 파편들을 책 외적인 이 세상과 연결하며 읽어가면 훨씬 해석하기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고대의 지혜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설명되고 있는 지혜와 외부지식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자 비로소 독서의 초점을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챕터는 1. 신 2. 신화와 설화, 3. 역사, 4. 문학 5. 무속, 점술 6. 철학 7. 신비주의 8. 마법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인류의 지혜가 무엇이었냐하는 비밀을 서술한게 아니라, 종교와 예술, 문화 등 인간이 이루어놓은 문명의 전반을 예로 들어 그 안에서 인간이 '지혜'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그 중심에는 종교가 있습니다. 왜 자꾸 지혜에서 종교를 언급하는지 의아했지만 저자는 지혜라는 것이 신비주의와 결코 떨어질 수 없었음을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이 책 <지혜의 역사> 챕터와 챕터를 거치면서 변한듯 변하지 않는 지혜가 시대에 맞게 때론 종교와 철학과 과학과 결합되어 어떻게 전수되는지 그 과정을 통시적으로도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여담으로 <지능의 역사>라는 과학책을 보면 종교와 이타심이 일종의 뇌의 오류와도 같다고 했습니다.(정확한 문장이 아니라 저자의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철저히 과학적인 시선에서라면 인간이 가끔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다는 뜻이지요. 그 말을 바탕으로 <지혜의 역사>가 서술해놓은 여러 문명의 지혜를 훑어보다가 지혜는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지능이 납득할 수 없는 스스로의 비효율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기제(?)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잘 사는 인생이란 '잘 헤쳐나가서', '번창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를 지혜로 총칭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삶에서 지능이 아니라 지혜를 더 필요로 한 이유는 그래서 도덕과 신앙으로 이어지고 이 오류를 설명하기에는 지난한 신비주의의 간섭이 있을 수 밖에 없었겠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특정 숫자나 의식에 집착하는 것, 샤먼이나 예언자처럼 신과 연결되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 육체보다 정신을 높이 여겨서 정신수련과 육체의 방해를 최소화 하려는 자세, 금욕주의 등은 이런 이유에서 전 세계에 걸쳐 나타는 현상이라고 볼 수 이습니다. 본문에서도 각 문화에 걸쳐서-특히 종교적인 문화를 중심으로-이 비효율성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쓴 흔적이 챕터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지혜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째서 많은 문명에서 지혜를 주는 신을 여성의 형태로 묘사하는지, 문명의 가르침, 언어, 문자의 전달과 지혜가 이어져 있는지 고찰하고 다양한 예시를 들어줍니다. 위에 문화인류학적인 서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의식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된 지혜를 살펴보면서 고대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인류 시원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효율성만 좆는 것은 공멸에의 빠른 지름길임을 알죠. 지혜는 중간중간 비효율을 섞음으로서 인류의 인생을 연장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합니다.
터무니없게도 종교와 철학 외에 여기서는 점성술과 신탁, 점 등 비과학적이라 비난받는 것들도 같이 다룹니다. 하지만 증명이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다루는게 아니라 인간이 지혜를 외부에서 구하려고 했다는 것의 기나긴 증거로서 다룹니다. 특히 강력한 존재를 믿어서 규범으로 발전한 종교와 달리 자연계의 법칙을 읽어서 사술로 남아버린 샤머니즘(점술)의 영역도 담았다는 것은 독특해보였습니다. 저자가 비록 동양 철학과 동양 점성술에는 능통하지 못하지만, 서양점성술과 동양점성술의 역사를 두루 설명하면서 미래를 확신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조명합니다. 이런 미래를 향한 항해술로서의 종교와 점술에 대한 믿음은 '인생을 잘 헤쳐가기'를 위한 나침반으로서 인간이 꼭 필요로 했던 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철학의 발전과 함께 이 책에는 속담을 들어서 소소한 일상 속에 녹아든 인생에 대한 지혜를 보여줍니다. 외부에서 자꾸 답을 얻으려고 하는 본성은 속담 속에 들어있는 담담하고 당연한 말씀을 무시하기 쉽지만 우리는 거기에 개인이 '잘 살고' '번창하기'위한 답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거대한 정답이 있는게 아니라 사소하고 꾸준한 실천이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구원한다는 다분히 자기계발서 같은 말들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해진다", "실패하면 지혜가 생긴다"와 같은 류의 속담이 있습니다. 문화 예술도 다양한 취향에 따라 발전해 왔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잠언의 기록들이 다수 종교의 경전 내용과 비슷하다는 본문내용을 보면, 인간의 인생이 결국엔 비슷한 모습으로 전개된다는 걸 알게 되지요. 이른바 '민중의 지혜'가 철학과 과학에 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지혜는 관습적인 것, 비과학적인 것, 종교적이고 신비한 성격을 좇아왔는데 현대에 이르러 점차 인간의 지혜는 과학적인것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삶에 대한 사실적 지식,절차적 지식,기술에 대한 것들만이 지혜의 전부는 아닙니다. 말했듯이 지혜는 다차원적이니까요. 지식과 지능은 기록이나 물리적 육체를 통해서 그대로 전수가 가능하다면, 지혜는 오직 사람과의 삶을 통해서 전수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인간이 추구했던 지혜가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