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혜진 옮김, 배세진 해제 / 우중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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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니체의 등장’

 

p.11 레닌의 글에서 ‘니체’를 본다. 산에 올라 30년 간 사유를 마치고 내려와 사람들에게 외친 차라투스트라를 본다. 제목은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하강과 상승, 몰락과 위버멘쉬를 떠올리게 한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훨씬 악화될 것”(p.13:18)이지만 우리는 작가가 주장한 것처럼 “책”(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연설)을 무기로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고 현재를 제로 포인트로 삼아 더 몰락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지젝은 더 나아가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p.167:4)고 주장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철학적 사유와 라캉까지 끌어온다.

 

이 책은 지젝의 주장을 담고 있다. 에세이 형식이지만 ‘리좀’적 글쓰기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지젝은 정말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여기서 ‘들뢰즈’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지젝은 들뢰즈를 비판한 책을 내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그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 책도 그런 면에서 많은 인물들과 다양한 분야가 소개되고 있다. 복잡해 보이고 어려워 보이지만 지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들로 따로 빼어두면 읽기 편해진다.

 

지젝은 자본주의의 종말, 조직화된 사회의 종말, 서구 세계의 붕괴, 전쟁을 언급한다. 몰락이다. 특이점을 향한 몰락. 재영토화를 위한 붕괴로 보인다. 이를 위한 현재의 시점, 그것이 제로 포인트로 여겨지는 이유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끌어와 그들이 하는 희망고문을 비판하고, 그들이 정한 개념들(극좌 등)을 비판하며, 이데올로기를 끌어온다. 이것들은 모두 라캉이 제시한 “대타자”(p.20:14) 개념으로 이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들로 보인다. 헤겔의 주장-역사적 반복(p.29:4)도 이미 언급한 ‘사건’의 반복으로 보인다. 지젝은 이를 “필연성”으로 본다. 그럼 우리는 ‘사건’들에 메몰될 것인가? 이 ‘사건’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인가? 지젝은 “저속하고 잔혹한 농담”(p.30:12)을 들어 트럼프의 집권을 비판하고 끝내 민주주의의 몰락을 경고한다.

 

지젝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탈레반의 배경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시오니즘, 이슬라모포비아, 반유대주의 등을 다시 라캉으로 설명하고 그 유래(근본-실체)를 자세히 드러낸다. 여기에는 유럽의 오판과 미국의 방관-방조가 스며있다. 나 또한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에 경악했다! 지젝은 현실판 니체 같다. 망치를 들고 사정없이 기존 생각들을 부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말만 하지 말고 뭔가 해’라는 어리석은 지혜를 완전히 뒤엎을 순간이다. 뭔가 하지만 말고 제대로 된 말을 해!”(p.39:3)라 주장한다.

 

라캉의 정신분석을 끌어와 수치심의 회복과 존엄에 대해 논한다. “존엄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p.43:19)하다고 말하면서 당장 먹을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천박한 물질주의를 비판하고, 그들의 존엄을 외면하는 “뻔뻔함”을 비판한다. 지젝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분석 사례를 인용한다. 이 사례를 통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단순히 PTSD로 설명할 수 없으며 가자 지구의 사람들의 경험을 그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말하면 지젝은 이를 통해 이스라엘 정권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어서 지젝은 “존엄과 정의의 밀접한 연관성”(p.48:21)에 대해 실제 사건들을 들어 논하며 이를 확장한다. 지젝은 정신분석의 목적을 들어 “주체로서의 완전한 존엄”(p57:16)을 말하며 “정의” 개념으로 돌아가 이를 다시 라캉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 자체로 목표이기 때문에 어떤 실용적인 정당화도 필요로 하지 않는 정의”(p.58:20)를 주창한다.

 

지젝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논한다. 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기존 가치체계를 부수는 듯하다. 이 대목에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여태까지 무엇을 근거로 이것을 바라보고 있었던가. 지젝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p.63:14)을 들어 설명한다. 이 대립에 있어 승자는 없다고 주장한다. 지젝은 근대 주요 분쟁들을 설명하면서 그 근본-실체를 드러내 보인다. 이것은 정말 수치스럽다!

 

지젝은 또 현 시점의 세계 경제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간다. 지젝은 “무료 홍보의 역설”(p.74:4)을 “이것은 아마도 세상의 종말에 대한 정의 중 하나”(p.74:7)라 말한다. 이렇게 볼 수 있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을 비판하면서 “신봉건적인 사기업의 영지를 일구는 농노로 전락하”(p.74:15)는 ‘우리’를 설명한다. 생각해보면 ‘나’부터도 – 자존심이 몹시 상하지만 - 이를 부정할 수가 없다. 지젝은 다양한 시점에서 이를 설명한다. 이 또한 몰락이다. 지젝은 몰락의 예로 “모부투의 몰락 이후 콩고”(p.83:15)를 든다. 더 이상 통일된 주권 국가로 존재하지 않는 나라. 뒤이어 참혹한 몰락의 대가가 나열된다. 몰락은 이런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시점을 제로 포인트로 삼아 더 몰락하지 않기 위해 각자 애써야 하지 않을까?

 

지젝은 세계 무역의 이면과 중국과 미국의 패권 다툼 등을 방대한 내용으로 다룬다. 리좀적 글쓰기의 정점 같다! 지젝은 “오늘날 가장 위험한 접근법”(p.102:14)으로 “실용주의적-현실주의 접근”을 예로 든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콩고를 소환한다. 콩고를 “파탄 국가”로 지칭하고 서구의 신식민주의적 착취에 열려 있고, 따라서 콩고의 굴욕은 두 배가 되고, 그것을 유지하는 이들에 의해 원시적인 국가로 제시된다고 주장한다. 계속해서 몰락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반대로 이를 조장-방조하는 배경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지젝은 1부를 이렇게 맺고 있다. “여기에 모순은 없다. ‘모순’은 상황 그 자체에 있다.”(p.105:22) 여지없이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다!

 

1부를 이렇게 자세히 쓴 것은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예리한 지적과 분석은 몹시 탐나는 그 무엇이다! 그는 현실판 ‘니체’라 할만하다. 기존의 상식(?)과 개념들을 여지없이 부수고 깨뜨려 버린다. 다시 생각하라고, 다시 말하라고, 다시 행동하라고 ‘나’를 충동한다.

 

잠시 표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표지에는 점들과 나선형 구조 그 아래에 제목이 놓여있다. 이 점들은 ‘라캉, 바디우, 들뢰즈의 세계관_장용순 저’ p.32의 도식 6과 p.191 도식 1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라캉에서 ‘대상a’, ‘증상’ 이고, 바디우에서는 ‘사건’이며, 들뢰즈에서는 ‘특이성’이다. 특히 p.191부터 이어지는 각 도식들은 들뢰즈 세계관을 요약한 매우 중요한 개념들을 보여준다. 니체의 사유를 이어받은 들뢰즈는 인류가 끊임없이 영토화와 재영토화를 이루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일치한다. 표지에 나오는 나선형 구조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책의 핵심을 잘 표현했기에 표지 디자인을 매우 잘 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2부 첫 대목에서 지젝은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2023년 10월 17일 제75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 인생에 한 번은 갈 수 있을까 싶은 - 의 개막 연설을 맡는다. 당시 조직위원장인 ‘유르겐 부스’가 부탁한 것이고, 지젝은 이 연설문을 조직위에 미리 보냈으며 당시 주된 이의제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센 주의 반유대주의 담당관 ‘우베 베커’에 의해 연설을 방해 받는다. 점입가경으로 ‘부스’는 연설의 본질을 훼손하는 망언을 한다. 2부는 1부와는 다르게 마치 일기처럼 전개된다.

 

지젝은 처음에 자신이 왜 공격을 받는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이유는 내가 너무 극단적이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내가 매우 균형 잡힌 중도의 입장에 있기 때문이었다.”(p.144:1)라고 썼다. 이 모든 일의 원천은 “2023년 10월 7일의 ‘알-아크사 홍수’작전과 이어진 가자 학살”(p.7:11)에 있다. 지젝은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이들을 비난하기”(p.144:4)가 “하마스의 공격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그 배경에 주목하는 이들을 비난하기보다 훨씬 쉽다.”(p.144:4~7)고 말한다. 지젝은 그 배경에 주목하는 쪽이라 생각된다. 그는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절망”(p.115:15)에 대해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자살 공격을 예로 든다. 지젝은 이것을 “그저 순수한 절망”(p.115:22)라고 표현한다.

 

지젝은 이후 일어난 여러 사건들과 언론의 보도 행태, 관련국들의 발표와 이를 바라보는 강대국들의 태도들을 비판한다.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인물들과 다양한 방면의 모든 것들을 끌어와서 각각의 이면들을 드러내고 본질을 분석하여 파악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지젝은 “말하기 적절한 때는 언제인가”라며 우리에게 묻는다. 1부에서 지젝은 “제대로 된 말을 해!”(p.39:3)라 주장했다. 2부에서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p.167:4)고 주장한다. 같은 문장 같지만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하나의 입장을 맹목적으로 보지 말고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견지해야 한다.”(p.121:22)고 충고한다.

 

"죽였으니까 죽인다니.. 죽였다고 죽임당하고.. 그렇게 하면 마지막에는 평화로와지냐"고 울부짖는 애니메이션 캐릭터(2002년에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시드”의 등장인물 중 ‘카가리’가 ‘아스란’에게 한 대사 중 일부)가 생각이 난다.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를 전쟁과 끝없는 폭력! 지워지지 않는 상흔과 눈물! "상황의 배경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문장이 배제와 비난의 근거가 되는 이상한 논리를 누구하나 시원하게 타파하지 못하는 무기력하기만 한 세계... 이런 세상에 '지젝'의 사유는 '나'에게 큰 울림을 던진다!

 

시오니즘과 반유대주의의 근간을 분석하고 그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들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지금 무엇을 할 것인지 길을 열어준다. 그들이 던지는 달콤한 말들에 현혹되지 않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유는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표지를 언급한 대목처럼 '특이점'은 곧 '주이상스'이고 그것을 기점으로 사회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고 앞으로 우리가 목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젝은 이를 위해 사유를 멈추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바로 지금이 “제로 포인트”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종말, 자본주의의 붕괴, 3차 대전 등을 경고한다.

 

이번에 발간된 지젝의 전작 ‘진보에 반대한다’부터 함께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득 느끼면서, 처음 만나는 분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서평단 활동을 한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좋은 결실을 맺어가는 우주서평단_철학방 멤버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가급적 오래도록 함께 해주시길 기원한다.

 

*.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서평단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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